맨발, 도종환
맨발로 산에 다닌 지 3년이 되어 간다.
요즘 남편은 새로운 운동 두 가지를 추가했다.
청력운동과 발가락으로 모래꼬집기.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한다. 청력이 좋아지면 치매도 고친다나?
바로 옆, 밤나무에 붙은 참매미가 우렁차게 소리 내고 있다.
들려?
응.
뭐래?
나 매미요 맴맴맴맴 매에.
또 물었다.
뭐래?
다 적었으면 얼른 가래.
휴대폰에 메모를 하던 나는 웃었다.
남편의 발걸음이 부쩍 느려졌다. 십 년 넘게 이 산을 다녔다.
늘 내 앞에서 힘차게 걷던, 내가 알던 그 걸음은 이제 없다.
더 빨리 걸으라고 뒤에서 독려한다. 그러다 고운 모래가 나오면 멈춘다.
우리는 한 참 서서 발가락으로 모래를 꼬집어 올린다.
남편의 발등이 오므라 들며 점점 들린다.
나는 발로 남편의 발등을 밟으며 꾸욱 누른다. 발바닥은 펴고 발가락 힘으로만 모래를 꼬집으라 시범을 보인다. 90도 각도로 구부러지며 야무지게 포클레인처럼 모래를 움켜 잡고 있는 내 발가락과 달리,
남편의 발가락은 뻣뻣하다. 구부러져 있지도 않다.
산에서 할 일이 많다. 시도 외우고, 눈운동도 하고, 귀운동도 한다. 평형감각 운동도 하고 발가락 운동도 한다.
신체 건강한 60대 초반 치매 환자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치매 게시판의 질문에 눈이 갔다.
그 집도 50대 후반 시작된 초로기 치매라고 했다. 5년간 멀쩡했는데 6년째 되는 올해, 몰라보게 안 좋아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남편은 3년 남은 것인가. 남편을 주간보호센터에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가, 어떤 질문에 날카롭게 찔렸다. 왜 거기 가면 인지가 떨어질 것이라 생각하냐며 발끈했다. <오 솔레미오>를 부르러 '평생학습관'에 가는 그런 남편을, 쥐눈이콩과 일반콩을 골라내는 프로그램이 있는 '주간보호센터'에, 보내고 싶지 않다. 할 수만 있다면, '평생학습관' 합창반에 '평생' 보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수준에 대해 생각해 봤다. 언젠가 소설가 김영하가 그랬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듯이, 한 번 작가는 영원한 작가라고.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웠다. 그럼에도 현실은 언제나 상, 중, 하 기준이 있다. '도토리도 키재기'를 하고, 오뉴월 땡볕도 하루 차이가 나는 법이다. 구별하고 분류한다. 벌어지는 수준과 격차를 무시할 수 있을까. 80대 치매와 5,60대 초로기 치매의 수준에, 나는 차이를 둔다. 그것이 아직은 남편을 주간보호센터에 보내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신체'는 건강한 젊은 치매 남성은 갈 곳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미룰 수 있다면 끝까지 요양 "등급"을 미루라는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고 싶은 것이다.
요즘 남편은 <깨진 틈이 있어야 그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는, 니체를 읽고 있다. 9월 들어서며 <영혼의 자서전>과 <자기 신뢰>도 읽었다. <애프터 라이프>라는 정신과 의사가 썼다는, 사후세계 관련책도 읽힐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읽고 감상문까지 쓴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를 읽으며, "내면화된 양심"에 대해 글을 쓰던 남편이었다. 알츠하이머 이전에 비하면 지금은 현저한 수준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부자 망해도 3대 간다니, 아직은 그나마 그래도 이 수준이나마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삶이란 모두 제 눈에 안경이겠지. 수준에 맞게 살겠지. 그 전설 같은 얘기가 생각난다. '다방'에 다니며 고시생을 뒷바라지했더니, 고시패스하고 그 여자를 버렸다. 예전에는 '그런 나쁜 놈이 있나' 그랬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성공해서 떠난 그 남자가 너무 부럽다. 치매 걸려 주저앉지 않은 것이, 내 눈에는 성공이다.
지금 나라면 그 남자를 위해 박수를 쳐줄 것 같다. 이런 얘기마저도 내 처지에 따라 달라지다니.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초로기 3년 동안, 남편의 활동도 늘었다. 학습 과목도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시낭송과 '맨발걷기'는 꾸준히 하고 있다. 맨발 걷기 만큼은 끝내, 끝내고 싶지가 않다.
태어날 땐 맨발이지만 살면서 신발을 신는 인간. <원숭이>도 <꽃신>의 맛을 보면 맨발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맨발을 통해, 역행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진보일 수 있다는 이 역설의 경험. 등산화 신고 십 년 넘게 다녔던 산이다. 맨발은 고작 3년 차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마치 태어날 때부터 쭉 맨발로 살아온 것만 같다. 지나온 보통의 날들이 까마득한 천년 전인 것만 같다.
도종환의 시 <맨발>을 외우며 맨발로 비탈길을 걸어 내려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본다.
나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걸까. 내 삶을 팽개치지 않고 있는 걸까.
"겨울에도 청둥오리처럼 발그레한 맨발을 바장이는" 남편의 쉼 없는 맨발 걷기.
나는 남편의 언 발을 따뜻하게 만져 주고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