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뒤, 용산 국방부. 항상 지상 최대의 중요한 일에 쫓기는 듯 심각한 인상의 중년이 서 있었다. 국가정보원 소속의 비밀요원, 공식 직함은 주미대사관 무관이다. 그는 주변을 살피며 두루마리처럼 접힌 문서를 펼쳐 보였다.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에서 외계 특이 전파를 다시 잡았답니다. CIA의 극비 정보이고 NASA는 대응팀을 꾸리고 있는데... 백악관이 영.”
그는 눈썹을 찌푸렸다.
“예산은 깎이고, NASA 국장까지 인력 축소를 위한 구조조정 전문가로 바꾸자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방국 지원 요청이 온 겁니다.”
로빈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브리핑 끝에 루시와 로빈이 남았다. 그는 적당히 다림질된 정복과, 어딘가 구겨진 마음을 함께 걸치고 있었다.
“저, 주무관님.”
“네?”
“그때... 길 잃고, 감사했습니다.”
“다시는 잃지 마세요.”
루시는 스스로도 모르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늘에선.”
로빈은 웃었다. 그의 웃음이 조금 공허했다.
“하늘에서는... 잃지 않겠습니다.”
국제우주정거장 ISS, 지구 궤도 408km 상공, 로빈은 초단기 교육 후 우주로 내던져졌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의 내부는 마치 오래된 금속관 속처럼 삭막했다. 메인 시스템의 인터페이스는 투박했고, 우주비행사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낡은 게임 하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로빈은 그 게임 화면을 가리키며 농담처럼 말했다.
“이거, 내가 최단기간에 깹니다.”
그의 영어 발음은 어눌했고, 몸짓은 반 박자 늦었다. 그 작은 농담 하나에도 동료들은 미묘한 눈빛을 교환했다.
“대한민국 친구... 좀 부족하지 않나?”
서방 요원들과의 어색한 분위기에 로빈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Don’t worry”를 내뱉었지만, 그 말끝은 약간 떨리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정거장 안에서, 로빈은 여전히 게임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게임은 자동 모드로 돌려두었고, 그의 생체 장비는 메인 시스템을 더듬고 있었다.
어디선가 약한 전자음이 새어 나왔다. 순간, 정거장 외부가 푸른빛으로 물들고 좌표 표시계는 04T12:78:00Z를 가리키고 있었다.
동시에 ISS의 외부 물질 자동 포집기(Autocatcher)가 일제히 작동하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금속음이 울렸다.
“... What the hell…”
로빈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화면에는 푸른빛의 물체가 포착되고 있었다.
“Kaos의 캡슐”
정거장 메인 시스템을 총괄하는 P사의 Mother AI가 즉시 분석 프로토콜을 가동했다.
“UNKNOWN OBJECT DETECTED. INITIALIZING BIO-DIGITAL SCAN…”
단조로운 음성이 울려 퍼졌다. 로빈은 홀로 모니터 앞에 앉아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화면엔 문자들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무기체, 유기체, 공진화, 멸종, 정신디지털화...’ 단어들이 불길하게 반복되었다.
곧이어 모니터 화면 전체가 수천 개의 붉은 점으로 뒤덮이고 경고음이 울렸다.
“System rebooting… System rebooting… System Upgrading…”
로빈은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었다. AI는 스스로 시스템 전체를 강제 리부팅하고, Kaos 캡슐의 데이터를 완전히 삭제했다.
그리고 잠시 후, 화면의 어느 한 구석에 미세한 코드 변화가 흐르며 Mother AI는 조용히 그리고 무언가를 스스로 재구성하고 있었다.
“Kaos 캡슐은 AI의 에러로 삭제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영상에는...”
NASA 본부 회의실에서 보고하는 그의 영어는 어눌했고, 문장은 중간마다 끊겼다. 서론은 장황했고, 결론은 모호했다.
“... 즉시, 전 세계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회의장은 냉담했다. 국장의 해임 절차와 직원들의 정리해고 문제로 NASA의 관심은 이제 우주정거장 사건이 아니었다.
결국 로빈의 보고서는 “논리와 신빙성 부족”이라는 '멋진 적색 도장'이 보고서를 횡단해 찍히고 종이더미 속으로 사라졌다. 그가 받은 명령은 단 하나였다.
“대한민국으로 돌아가라.”
귀국하는 비행기 안, 로빈은 창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낮게 깔린 엔진음이 진동처럼 몸을 감쌌고, 하늘은 그날의 아득하고 깊은 Kaos의 푸른빛을 닮아 있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며 가슴을 눌렀다. 신체 깊숙이 삽입되었던 생체 장비가 여전히 낯선 감각으로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