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거짓말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고

by 건강한 오후

냉동고 문이 열렸다. 하얀 김이 쏟아졌다. 형광등 불빛 아래, 어머니는 하얗게 굳은 채 눈을 감고 계셨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만졌다. 손끝의 차가움 속에서, 냉동실 특유의 쇠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3년 전 내가 밀어냈던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2006년 가을, 어머니의 칠순이었다. 형이 전화를 했다. "토요일 저녁이다. 엄마가 네가 오면 좋겠다고 몇 번을 말씀하시네." 나는 책상 위 승진 면접 자료를 보았다. 월요일 발표. 경쟁자 다섯 명 중 두 명만 진급한다. "미안, 회사 일이 좀 걸려 있어서." "알았다. 그럼 다음에." 형의 목소리에 실망이 묻어났지만, 나는 전화를 끊고 다시 자료에 고개를 숙였다.


월요일 아침, 뒤늦게 전화를 걸었을 때 어머니는 늘 그렇듯 담담하셨다. "괜찮다. 네가 바쁜 거 아는데 뭐. 승진 잘 되길 바란다." 어머니는 그 말 뒤에 항상 "조심해서 다녀라"는 당부를 덧붙이셨다. 나는 그 "괜찮다"는 말을 어머니의 진심이라 믿었다. 아니,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진심이어야만 했다.


승진 발표가 났다. 나는 떨어졌다. 사무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날 저녁 술잔을 기울이며 어머니 생각이 났지만, 전화를 걸지 않았다. 어머니께 위로를 구하는 것조차, 그때의 나에게는 패배를 인정하는 일 같았다. 그 후로 나는 어머니와 점점 덜 통화했다.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어머니는 여전히 "괜찮다"고 하셨다.


3년 뒤인 2009년 봄, 어머니는 무릎 수술을 앞두고 계셨다. 수술 전날 저녁, 전화가 왔다.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잠깐 다녀올게. 곧 병원으로 돌아간다." "엄마, 밖에 나가지 마세요. 내일이 수술인데." "괜찮아. 한 시간이면 돼. 걱정 마라." 나는 프로젝트 최종 보고를 준비하고 있었다. 3년 전 승진 실패 후, 나는 더 악착같이 일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간의 노력을 증명할 기회였다. 어머니가 금방 돌아오실 거라 믿으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저녁 8시, 병원에서 환자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형이 경찰서로 달려가 실종 신고를 했다고 전화했을 때, 나는 모니터 앞에 앉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몸이 굳어버렸다. 프로젝트 보고서의 엑셀 숫자들이 흐릿하게 번졌다. 나는 그 숫자들을 응시하며 어머니가 무사하기를 빌었다. "곧 돌아오시겠지"라는 주문을 외우며 나는 사무실에 남았다. 보고서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일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자정 넘어 형에게 전화했다. "아직 못 찾았어. CCTV 확인하고 있어." 형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내가 지금 갈게." "넌 거기 있어. 어차피 네가 와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전화를 끊었다. 사무실 소파에 누웠다. 형광등이 윙윙거렸다.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형의 전화였다. "찾았어." 나는 안도했다. "병원 어디야?" "안치실." 그 단어를 이해하는 데 몇 초가 걸렸다. 안치실, 차가운 냉동고 안에서 어머니를 다시 만났다. 문이 닫힐 때 쇠붙이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경찰은 말했다. 어머니가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였다고. 나는 그 교차로를 안다. 내가 매일 지나다니던 그 사거리였다.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셨다고. 형이 물었다. "엄마가 집에 급한 일이 있다고 나가신 거 맞지? 그게 뭐였을까." 우리는 알지 못했다. 수술 전날, 추운 저녁에, 아픈 무릎을 이끌고 어머니는 무엇 때문에 그 길을 건너셨던 걸까. "괜찮아. 한 시간이면 돼."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어머니에게 그날은 전혀 괜찮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으셨다. 수술을 앞둔 자식들처럼, 중요한 발표를 앞둔 아들처럼, 당신의 가족들은 늘 바쁘고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


장례를 치렀다. 회사로 돌아갔다. 프로젝트는 성공했고, 나는 승진했다. 그 후로도 나는 계속 일했다. 어머니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더 바쁘게 일했다.


은퇴 후, 집안은 조용해졌다.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어머니의 차가운 손끝이 있었다. 일하는 동안은 괜찮았다. 회의, 보고서, 출장. 일이 나를 지켜주었다. 하지만 일이 사라지자, 어머니가 보였다.


나는 어머니의 "괜찮다"가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것은 아들의 발목을 잡지 않으려는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거짓말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평생 배운 유일한 대답이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 것. 그것이 '좋은 어머니'라고, 누군가 어머니에게 가르쳤을 것이다.


나는 정말 몰랐을까. 칠순 잔치 불참을 말씀드릴 때, 전화기 너머 3초간의 침묵을. "괜찮다"는 대답이 나오기 전, 어머니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셨던 것을. 나는 들었다. 하지만 듣지 않기로 선택했다. 칠순 잔치 상머리에서 느끼셨을 고독을, 수술 전날 병실에서의 간절함을 나는 "바쁨"이라는 소음 뒤에 숨어 외면했다.


어느 밤, 책장에서 꺼낸 책의 제목이 나를 붙잡았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어머니와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을까. 아니, 있었다. 다만 나는 그것이 행복한 시간인 줄 몰랐을 뿐이다.


어머니는 내가 전화를 끊을 때까지 먼저 끊지 않으셨다. "그럼 끊어"라고 말해도 어머니는 "응, 너 먼저"라고 하셨다. 나는 짜증이 났다. "빨리 끊으세요." "조심해서 다녀라." 그 목소리 뒤로 수화기가 놓였다. 어머니는 수화기를 놓지 못하고 한참을 더 기다리셨을 것이다.


승진 발표 다음 날 아침, 어머니가 전화하셨다. "괜찮아. 다음에 또 기회 있어." 나는 "응"이라고만 대답하고 끊었다. 그날 저녁 어머니가 내 집 앞에 반찬을 놓고 가셨다는 문자가 왔다. 나는 다음 날 아침에야 그것을 발견했다. 김치 냄새가 계단까지 배어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의 휴대전화 통화 기록을 열어봤다. 내 번호로 걸려온 통화는 다섯 개, 내가 건 통화는 두 개뿐이었다. 마지막 통화. 2009년 3월 15일. 수술 전날 밤.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용서가 과거를 잊는 것이라 말하지만, 냉동고 문을 열어본 사람은 안다. 그 차가움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도 누군가의 손을 잡을 때, 어머니의 손끝 온도가 겹쳐진다. 나는 더 이상 차가운 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머니가 내게 남긴 것이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위해 만들었던 그 거짓말들을 하나씩 꺼내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를 향한 면죄부가 아니라, 어머니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겠다는 뒤늦은 항복이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산소로 가는 길. 첫 방문 때는 두려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얼굴로 어머니를 마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국화 한 다발을 들고 무릎을 꿇었을 때, 입에서 나온 것은 "죄송합니다"뿐이었다. 그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바람이 불고, 국화잎이 흔들렸다.


석 달쯤 지나자 "오늘 날씨가 좋네요"라는 말이 나왔다. 그 뒤로는 조금씩 이야기가 늘었다. 지난주에는 회사 후배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전 주에는 동네 슈퍼 아주머니가 어머니 안부를 물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요즘은 아침에 먹은 음식, 텔레비전에서 본 뉴스, 밤에 읽은 책 이야기를 어머니께 들려드린다.


그 시간만큼은 거짓말 없이, 내 삶의 작은 무게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하지만 가끔 의심이 든다. 이것은 어머니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나를 위한 것인가. 승진에 실패했던 날의 쓸쓸함도, 프로젝트에 매달렸던 그 악착같은 시간도, 어머니를 잃고 나서야 깨달은 허망함도. 비록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으시지만, 바람이 불어 국화잎이 흔들릴 때면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그래, 조심해서 가거라."


산소를 내려오는 길, 봄바람이 뺨을 스친다. 따뜻하다. 저 아래 마을에서는 누군가의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빨래를 너는 아주머니, 자전거를 타는 아이, 담배를 피우는 노인.


수술 전날, 추운 저녁에, 아픈 무릎을 이끌고 나가셨던 그 급한 일이 무엇이었든, 칠순 잔치에 아들이 오지 않았어도, 어머니는 단 한 번도 "힘들다", "외롭다", "서운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나는 산을 내려간다. 저 아래 마을, 누군가는 지금도 전화를 끊고 있을 것이다. "엄마, 바빠서 이번 주말도 못 갈 것 같아." "괜찮아. 다음에 와." 그 "괜찮아" 뒤에 숨은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그 아들은 아직 모른다. 냉동고 문이 열리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