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창의 커서, 27년의 침묵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와 토니 모리슨 『빌러비드』를 읽고

by 건강한 오후

1998년 4월 어느 오후, 나는 회의실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봄볕이 쏟아졌지만, 회의실 안은 형광등 아래 겨울처럼 차가웠다. 손에 쥔 볼펜이 축축했다. 서늘한 목소리가 구조조정 명단을 읽기 시작했다. "영업팀, 김○○." 내 옆자리에 앉은 동기였다. 1995년 함께 입사해 3년을 견뎌온 사람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의 뒷덜미에 난 짧은 머리카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 말해야 했다. "이건 부당합니다." 단 한마디면 되는 것이었다. 회의실 안 열다섯 명 중 누구라도. 나는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 입안이 바짝 말라 있었다. 그 순간 한 가지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살아남아야 한다. 다음 명단에 내 이름이 불릴 수도 있다. 나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그날 밤, 동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괜찮아. 이해해. 너도 힘들었겠지."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나는 "미안해"라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괜찮아"는 용서가 아니었다. 내 혀를 더 굳게 만드는 주문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방 안이 너무 조용했다. 창밖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퇴근하고,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그 안도감이 주는 구역질이 동시에 밀려왔다.


27년이 흘렀다.


은퇴 후 처음으로 책을 천천히 읽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던 어느 밤, 책장을 넘기다 손이 멈췄다. 제주 4·3 생존자 정심이 70년 동안 말하지 못했던 그 침묵이, 나의 27년과 너무 닮아 있었다. "사라진 이들은 정말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 문장이 가슴을 찔렀다. 경하가 발굴 현장에서 듣는 삽날 소리, 증언자의 텅 빈 눈빛, 이름 없는 뼛조각들. 책은 거대한 학살의 기록이 아니라 이런 작은 흔적들로 채워져 있었다.


내가 외면했던 사람들도 사라지지 않았다. 부당한 발령을 받고 복도를 걸어 나가던 후배의 뒷모습, 산재를 당하고도 입을 다문 협력업체 직원이 남긴 낡은 안전모, "선배, 잘 지내세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동료의 목소리. 그들은 모두 지금도 내 안에 살아 있었다.


한강의 책이 침묵의 무게를 가르쳐주었다면,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는 그 무게가 어떻게 귀환하는지 보여주었다. 세스가 죽인 아기가 '빌러비드'라는 젊은 여자의 몸을 입고 돌아온다. 귀신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였다. 숨결, 살갗, 냄새. 생생한 존재로 세스의 삶을 잠식했다.


동기의 "괜찮아"도 그렇게 돌아왔다. 27년 동안 나는 그 말을 잊으려 애썼지만, 그 말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밤마다 꿈에 나타나 물었다. "정말 괜찮았냐고?"


두 작가가 내게 같은 것을 말했다. 고통은 과거에 묻히지 않는다. 작별할 수 없는 것들은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문다.


그렇다면 나의 침묵은 무엇이었나. 정심은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말할 수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직업인'이라는 역할 속에 숨어, 나는 침묵을 방패로 삼았다. 그 방패는 나를 지켰지만, 동시에 다른 이들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며칠 전, 나는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동기의 이름을 쳤다가 지웠다. 다시 쳤다가 또 지웠다. 27년 만에 그의 소식을 찾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혹시 그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면? 혹시 그 "괜찮아"가 진심이 아니었다면? 커서가 깜빡이는 빈 검색창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는 화면을 껐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것이, 언젠가 그 검색 버튼을 누르기 위한 첫 번째 연습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이 내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과 작별하지 못하고 있는가? 나는 이제 안다. 작별할 수 없는 것은 정심의 70년만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27년의 침묵이라는 것을. 그 침묵 속에 더 이상 숨지 않기 위해, 나는 펜을 들었다.


굳어버린 혀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 그날 회의실에서, 복도에서, 사무실에서 하지 못했던 말들을 이제는 쓴다.


늦었지만, 아직 늦지 않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