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공범

밀란 쿤데라 『농담』을 읽고

by 건강한 오후

1995년 11월의 어느 오후, 회의실 형광등은 유난히 차가웠다. 부장이 서류철을 탁자 위에 내려놓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점심시간에 사장님 흉내 낸 사람, 누구야?"


나는 쥐고 있던 볼펜의 클립을 만지작거렸다. 옆자리 김 선배의 호흡이 멈춘 것 같았다. 불과 두 시간 전이었다. 구내식당 창가 자리에서 김 선배는 숟가락을 마이크처럼 들어 올리며 사장의 쉰 목소리를 흉내 냈다. "이 새끼들, 밥도 빨리 안 묵고 뭐 하노?" 국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우리는 배를 움켜쥐었다. 깍두기를 씹던 막내도, 김치찌개를 뜨던 나도, 그 순간만큼은 한통속이었다. 식판 부딪치는 소리에 묻혀 터져 나온 웃음은 안전했다. 그렇게 믿었다.


부장의 시선이 한 명씩 훑고 지나갔다. 김 선배가 숨을 크게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수첩 모서리에 의미 없는 선을 그었다. 한 번, 두 번. 손끝이 떨렸다.


"들은 사람도 없어?"


부장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김 선배의 눈빛이 내 쪽으로 향하는 게 느껴졌다. '네가 봤잖아. 네가 제일 크게 웃었잖아.' 구조 신호였다. 하지만 나는 펜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수첩의 격자무늬만 세었다. 침묵. 그것이 나의 대답이었고, 선택이었으며, 안전이었다.


일주일 후, 김 선배의 책상은 비워졌다. 30초짜리 농담이 10년짜리 한직 발령이 되었다. 웃음은 사라지고, 인사 기록에는 '근무 태도 불량' 네 글자만 남았다. 누구도 그의 이름을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선택에는 뿌리가 있었다. 1987년 겨울, 학교 앞 '청송주막'의 테이블은 늘 미끄러웠다. 막걸리가 엎질러진 자국 위로 우리는 손을 얹고 최루탄 냄새를 씻어냈다. 그해 우리는 구호와 각오 속에 살았지만, 그 긴장을 깨뜨리는 것은 때로 예상치 못한 농담이었다. 그날도 선배 한 명이 막걸리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노태우가 민주화를 하겠다는 건, 늑대가 채식을 하겠다는 거지." 우리는 배를 잡고 웃었다. 막걸리가 잔을 타고 넘쳤다. 누군가의 손이 탁자를 쳤고, 그 진동에 젓가락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나 주점 문이 열리는 소리에, 와르르 터졌던 웃음은 칼로 자른 듯 뚝 끊겼다. 문틈으로 들어온 찬바람에 촛불이 흔들렸다.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숙이고, 막걸리잔만 들여다봤다. 농담은 경계를 허물고 위선을 찌른다. 그렇기에 가장 위험하다. 그날 밤, 우리는 그것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그 교훈을 충실히 따랐다. 30년 동안.


은퇴 후, 동네 도서관에서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처음 읽었다. 90년대 회사 생활 중엔 읽을 겨를이 없었다. 체코의 전체주의를 다룬 소설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알았을 뿐이었다.


이제야 그 책을 펼쳤다.


주인공 루드비크는 장난으로 보낸 엽서 한 줄로 탄광에 끌려갔다. 젊은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그 억울함에만 분노했을 것이다.


그러나 쉰여덟의 내가 숨을 멈춘 건, 그를 추방한 친구 제마네크였다. 제마네크는 훗날 그 일을 완전히 잊고 성공한 삶을 살았다. 루드비크가 복수하려 했을 때, 제마네크는 그날을 기억조차 못했다. 탄광의 석탄 가루보다 루드비크를 질식시킨 건, 자신을 지운 친구의 깨끗한 얼굴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손이 떨렸다.


나는 루드비크가 아니었다. 나는 제마네크였다. 1995년 그 회의실 이후, 나는 김 선배를 외면하고 30년을 살았다.


잊는다는 것은 얼마나 편리한가. 나는 김 선배를 버림으로써 매일 밤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었다. 1987년 주점에서의 공포는 시간이 흐르며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방패가 되었다. 나는 권력의 농담을 웃어넘겼다. 동료의 고통을 외면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손쉽게 없앴다.


정말 그랬을까?


작년 가을, 대학 동기들의 모임이 있었다. 누군가 1987년 그 주점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우리 참 무서웠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끄덕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나는 1995년의 김 선배를 떠올렸다. 그의 성은 기억난다. 김 씨. 하지만 이름 두 글자가 떠오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옛 명함철을 뒤졌다. 없었다. 명함 한 장, 전화번호 하나, 이름 석 자. 그 모든 것이 내 서랍 어딘가에서 사라져 있었다. 아니, 언젠가 내가 버렸을 것이다. 정리한답시고, 필요 없다고 판단해서.


망각은 그렇게 완성된다. 지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시간이 알아서 지워준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시간을 이용해 지운다. "잊어버렸다"고 말하면,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니게 되니까.


은퇴 후 5년이 지나서야, 나는 고백할 수 있었다. 1995년과 1987년, 그 두 번의 배신이 내 삶에 남긴 가장 부끄러운 얼룩이었다고.


그러나 이 고백마저도 의심스럽다. 김 선배의 상처는 아물었을까. 아니, 그에게는 상처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내가 침묵했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을 테니. 진짜 상처는 내 안에 있다. 나만 알고 있는 배신. 나만 기억하는 망각. 이것이 공범의 형벌이다. 칼에 베인 상처는 아물지만, 기억에서 지워진 사람의 상처는 피도 흐르지 않아 영원히 아물지 않는다.


책을 덮었다. 1987년 주점을 나서며, 1995년 회의실에서, 나는 침묵을 택했다. 그리고 30년 동안 그 선택을 잊고 살았다.


지금도 나는 그 선배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또 다른 누군가를 잊고 있을 것이다.


망각의 완성이다.


쿤데라의 농담은 더 이상 웃음이 아니다. 비명이다. 김 선배의. 그리고 내가 아직 이름도 모르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