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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나는 어른이 아니었다

쨍그랑, 그리고 조용한 마음의 울림

by 사랑


쨍그랑 소리와 함께 유리잔이 바닥에 부서졌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놀람과 당황 속에 얼어붙었다.

‘이걸 어떻게 치우지…?’

책임감과 긴장감이 한꺼번에 밀려오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때, 내가 움직이기도 전에

아이들이 먼저 움직였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챙겨 오는 아이,

조심스럽게 파편을 정리하는 아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아이들은 자기 일처럼 움직였다.


“쌤 다쳐요, 저희가 할게요.”

그 말이, 부서진 유리잔 사이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나는 선생이고, 아이들은 학생이니까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날,

내가 채워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그 자리를

아이들이 따뜻하게 메워주었다.


그 기억은 아직도 마음속에 포근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문득, 이제는 볼 수 없는 아이들이 떠오른다.



우리 센터엔 분위기를 환하게 만들어주던

중학교 남자아이 두 명이 있었다.

입사 초기, 나는 그 아이들로부터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고, 아이들은 나에게 웃음과 에너지를 선물해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웃음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아이들은 상처를 안고 센터를 떠났다.

이름만 불러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던 어느 선생님의 말투, 지속된 명령조의 말, 무심한 표정,

장난처럼 던졌지만 아동에게는 위협처럼 느껴졌던 말들.


그 모든 것들이 하루 이틀 쌓여

아이들 마음속엔 보이지 않는 독처럼 남았다.

그리고 결국, 아이들은 등을 돌렸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신입이라는 이유로,

아직 구조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무력한 시간 속에서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센터의 입장을 지키면서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그날 이후, 나는 늘 이 질문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어떤 공간을 함께 만들어가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선생님이라는 자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먼저 마음을 읽고,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내가 먼저 마음을 열 때,

아이도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지키는 일,

그건 ‘누가 더 어른인가’를 묻는 싸움이 아니라,

‘누가 더 먼저 사랑했는가’를 남기는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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