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틀린 날, 가장 가까이서
학습을 위해 온 아이의 표정이,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늘 밝은 에너지로 씩씩하게 움직이던 아이.
자주 덤벙대고, 사고도 치고, 다치기도 하면서 지도를 자주 받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학습을 위해 다가와 서있는다.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평소와 다름없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눈빛에서 아주 작은 변화를 느꼈다.
나는 감정에 유독 민감한 사람이다.
이 감정들이 너무 힘들어, 제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던 적도 있다.
그 민감함 때문이었을까.
스쳐 지나간 그 짧은 순간,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30분 전쯤, 계단에서 마주쳤을 때
“다 끝났어?” 하고 묻자
“이제 수학하려구요.” 하고 지나가던 아이.
익숙한 대화였지만, 잠깐 스친 표정이 마음에 남았다.
‘뭐지?’ 하고 넘겼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무실에서 다시 마주한 아이에게
그냥, 직감으로 물었다.
“너 왜 그래?”
대답은 없었다.
대신, 고개가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평소 억울해도 혼나도 울지 않던 아이가
눈물을 한 방울, 똑. 흘렸다.
다른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아이와 단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오늘 너무 힘들었어요…”
“무슨 일 있었어? 뭐가 힘들었는데?”
토닥이며 묻자,
아이는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군다.
“영어를 철자까지 다 외워야 했어요.”
“그게 많이 힘들었구나.”
“네… 많았어요.”
“또 다른 일은 없었어?”
조심스럽게 덧붙인 말.
“수학을 하러 갔는데… 다 틀렸어요.
문제 개념을 잘못 이해해서, 식을 잘못 써서 다 틀렸어요.”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냈지만
결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하루.
그 아이의 마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문제야 다시 풀면 된다.
하지만 아이가 흘린 노력은, 결과로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게다가 혹시라도 선생님에게 혼날까,
좋은 말을 듣지 못할까,
스스로를 자책하며 나를 똑바로 보지도 못한다.
“오늘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다 틀렸다는 걸 보니까 너무 속상했구나?”
고개를 조용히 끄덕인다.
만약 내가 감정에 민감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 중심을 읽지 못했다면,
이 아이는 또 어떤 방향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게 되었을까.
센터에는 공부가 싫어서
가짜 아픔, 가짜 눈물로 표현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걸 구분해 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와의 관계, 라포가 단단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냥 하기 싫은 거 아니야?”
그 말 한마디가
때로는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그 안에 담긴 중심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오늘, 그걸 지나치지 않은 나에게
조금은 고마웠다.
내 감정의 민감함이 미움이, 오늘은 감사함이 되어주었다.
이런 하루는 흔하다.
이런 선택의 순간은, 무수히 쌓인다.
하지만 그 작은 선택 하나가
아이의 마음에 아주 커다란 영향으로 남을 수 있다.
진짜 아이의 마음을 알 수는 없다.
다만, 이런 순간들이 아이가 다시 일어서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도 나는
고민하고, 자책하고, 무너지며
아이들과 함께 자라고 있다.
부족한 선생님이라서,
오늘도 참 많이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