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창제만 알고 있다면, 오늘 꼭 읽어야 할 이야기
“세종대왕 하면 뭐가 떠오르나요?”
대부분은 이렇게 대답하곤 합니다. “한글이요!”
물론입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일은 우리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손꼽히는 위대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세종은 단지 글자를 만든 임금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과학, 음악, 복지, 국방, 외교, 농업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통치를 실현한 정치적 천재이자 문화적 개혁가였습니다.
오늘은 한국사 교과서를 넘어서, 세종대왕이 이룬 6가지 핵심 업적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 안에서 진정한 ‘민본 군주’의 얼굴을 만나게 되실 겁니다.
세종 25년(1443년), 세종은 백성을 위한 글자, 훈민정음(나랏말싸미...)을 직접 창제합니다.
이전까지는 오직 한자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글을 읽고 쓰는 일은 양반과 일부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종은 “백성이 말은 하되 글을 알지 못하여...”라는 문제의식을 품고,
소리의 원리를 연구하여 28자의 훈민정음을 창조했습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창제자와 원리를 모두 아는 문자입니다.
이 한 가지 업적만으로도 세종은 단순한 ‘왕’을 넘어, 민중의 언어를 지켜낸 해방자였습니다.
세종대왕은 과학기술의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군주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바로 측우기(1441년 발명)입니다.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 기구로, 전국적으로 설치되어 기후와 농사 정책의 정밀한 데이터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장영실을 비롯한 과학 인재들을 등용하여 해시계(앙부일구), 물시계(자격루), 자동 물레방아(수차) 등의 기계도 개발하게 했습니다.
이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과학으로 민생을 다스릴 수 있다는 철학을 상징합니다.
1430년대, 세종은 조선의 풍토에 맞는 농업 기술을 정리한『농사직설』을 편찬하게 합니다.
이 책은 중국 농서를 단순히 베낀 것이 아니라, 직접 조선 농민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록한 최초의 농서입니다.
세종은 실제 농사꾼의 말에 귀 기울였고, 이를 정책에 반영했습니다.
그가 중시한 건 지식인의 문장보다 논밭에서 흘리는 땀의 무게였습니다.
세종대왕은 음악 역시 다스림의 도구로 여겼습니다.
그는 단순한 예술 향유를 넘어서, 백성이 쉽게 익히고 부를 수 있는 음악 체계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바로 정간보(음악을 표기하는 우리 고유의 기보법)입니다.
또한 『악학궤범』을 통해 궁중 음악뿐 아니라 민속 음악까지 정리하고 체계화했습니다.
세종에게 음악은 단지 취미가 아닌, 공동체의 조화와 위로를 위한 문화적 토대였습니다.
세종은 북방 영토 확장에도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조선 초기, 북방은 여진족의 위협이 계속되던 불안한 지역이었습니다.
이에 세종은 김종서를 중심으로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을 개척하여 4군 6진을 설치하고
지금의 함경도 지역을 조선의 영토로 확정시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한반도 영토의 틀을 확립한 결정적인 조치였으며,
단순한 확장이 아니라 이주 정책과 군사 방어체계까지 포함된 종합적인 국방 전략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의 업적을 이야기하면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됩니다.
그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 임금이었습니다.
글자도, 과학도, 농서도, 음악도, 국방도, 학문도…
모두 ‘백성’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종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보여준 통치는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고민’이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