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을 바꿔드립니다

요즘 우리가 감정을 맡기는 방식

by 스틸앨리스

요즘 세상에는 기분을 바꿔주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야 할까,

정확히 말하면, 기분을 바꿔주는 알고리즘들이다.


휴대폰을 켜는 순간,

우리는 묻지도 않았는데 답을 받는다.

“지금 당신은 이 영상을 보면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이 문장은 당신을 웃게 만들 거예요.”

“이 장면은 당신을 위로할 거예요.”


SNS의 알고리즘은

이제 우리의 취향보다 앞서

감정 상태를 먼저 읽는다.


언제 우리가 웃는지, 어디에서 스크롤을 멈추는지,

어떤 영상 앞에서 손가락이 느려지는지.

그 모든 데이터는'당신의 오늘 기분’을 추정하기 위한 재료가 된다.

그리고 알고리즘은 늘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걱정 마세요. 제가 기분을 바꿔드릴게요.”


문제는 이 지점이다.

기분이 나쁜 이유를 묻지 않고,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데만 집중한다는 것.


슬픔의 맥락은 생략되고, 분노의 원인은 삭제된다.

대신 귀여운 영상 하나, 자극적인 장면 하나,

짧은 웃음 하나가 그 자리를 채운다.


기분은 분명 조금 나아진다.

하지만 감정은 처리되지 않은 채 남는다.

우리는 점점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조정받는 사용자가 되어간다.


우울하면 귀여운 영상을 보고,

지루하면 더 자극적인 콘텐츠로 넘어간다.

불편함은 스킵하고, 침묵은 알고리즘이 대신 채운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감정은 ‘살펴봐야 할 신호’가 아니라 ‘빠르게 바꿔야 할 상태’가 된다.

하지만 감정은 원래 기분처럼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이 아니다.


기분은 바꿀 수 있지만, 감정은 지나가야 한다.

통과하고, 머물고, 정리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은 저녁 명상을 안 한 지 오래되었다

매일 센터로 가서 그날의 일상을 돌아보며 나의 감정을 나의 상태를 , 말과 행동을 돌아보던 때,

아마도 그때만큼은 나에게 온전히 집중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가끔은 슬픔이 있었는지조차 모른 채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할 기회를 잃는다.

“나는 왜 이런 기분이 되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알고리즘이 가장 잘하는 일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불편한 감정을 마주할 때 성장한다.

조금 어두운 생각을 통과할 때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분을 바꾸는 기술이 발달할수록,

감정을 들여다보는 능력은 오히려 퇴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알고리즘보다 느린 선택을 해본다.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때 억지로 웃긴 영상을 보지 않고, 그 감정을 그냥 두어본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오늘은 기분을 안 바꿔도 괜찮아."

기분을 바꿔주는 세상에서 감정을 지켜내는 일은

꽤 의식적인 선택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정교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조금 느린 감정의 속도일지도 모른다.

기분은 바뀌어도 괜찮지만, 감정은 사라지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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