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마 빙수야

여름의 위로, 빙수 한 그릇

by 스틸앨리스

카카오톡을 열어본 어느 여름 아침, 흔한 이름이지만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항상 응원해요.” 매일 챌린지 하며 단톡방에서 만나던 분 중 한 명이었다.

짧은 인사와 함께 온 건, 의외의 쿠폰 한 장.

처음엔 커피 쿠폰인가 싶었다. 피곤한 일상에 누군가 건네는 따뜻한 한 잔이라면 꽤 괜찮은 하루의 시작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요즘 없어서 못 먹는다며 (가성비가 좋고 맛있어서 ) 줄 서서 먹는다는, 바로 그 집의 ‘빙수’였다.

빙수였구나!

며칠 전, 동네 카페에 새로 등장한 ‘메밀 빙수’가 문득 생각났다. 그릇도, 플레이팅도, 홍보도 심상치 않아 보였던 그 빙수는 서울 어딘가 감각적인 골목길에서나 볼 법한 느낌이었다. 얼마나 맛있을까 싶어 메뉴판을 슬쩍 들여다보다가, 가격을 보고 조용히 내려놨다. 27,000원?

숫자에 놀라고, 혼자라는 사실에 또 한 번 움츠러들었다.

옆자리에서 유기그릇에 담긴 빙수를 맛보던 누군가의 숟가락 놀림을 힐끗힐끗 훔쳐보며, 괜히 내 초라한 마음만 들켜버린 듯해 자리를 뜨고 싶었다.

혼자 먹기엔 꽤나 값은 나갔고 문득 같이 먹고 싶은 언니들이 생각났기에 조용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먹고 싶은 마음을 잠시 눌러놓는다

생각해 보면 나는 원래 빙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특히 여럿이 둘러앉아 숟가락을 동시에 찌르며, 누군가는 꼭 그것을 ‘비벼야 제맛’이라며 질척이게 만들던 그 장면이 싫었다.


얼음은 금세 녹아 물처럼 흐르고, 팥은 흩어져 그 정체를 잃고, 달달한 연유는 질감까지 뒤섞어버리는 혼돈의 카오스.

그 속에는 누군가의 손끝, 온기, 숨결이 닿았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편함까지 담겨 있었다.

나는 바느질 작업에서는 삐뚤삐뚤 손맛 나는 스티치를 좋아하는 질서 있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음식에서 만큼은 무정형의 친밀감에 쉽게 안착하지 못하던 사람인건 분명하다.


그렇게 그 아침의 쿠폰 한 장이 오래된 여름 한 조각을 조용히 떠올리게 했다.

에어컨 없이 선풍기 바람에 기대던 교실, 학원 가방을 메고 분식집으로 향하던 발걸음, 그리고 “빙수 먹고 가자”는 친구의 말에 반쯤은 질질 끌려 들어간 가게 안. 질척한 얼음 사이로 웃음과 땀, 시험 얘기와 꿈 얘기가 뒤섞여 있던 그 시절의 맛.


이제는 혼자 먹는 빙수를 더 좋아한다.

각이 잡힌 그릇, 층층이 정갈하게 쌓인 얼음, 그 사이를 흐르는 과일과 연유. 한 입 한 입 천천히, 내 기분에 맞춰 녹여내는 여유.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누군가의 숟가락 속도를 따라가지 않아도 되는 자유.


그래서일까. 그날 아침 건너온 쿠폰이, 단순한 디저트 그 이상으로 느껴졌다. 빙수 한 그릇 안에 담긴 누군가의 안부, 추억, 그리고 잊고 지냈던 이름 하나까지. 학창 시절 흔한 이름 중 하나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빙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내가, 오늘은 그 집에 들러볼까 한다. 사진을 보아하니 개인 컵에 담겨 적당한 양과 깔끔함까지 너무 좋았다. 아마도 나는 "녹지 마 빙수야 "또 혼잣말로 웅얼거리며 숟가락을 들겠지?

질척하지만 달콤한 여름의 위로 한 그릇을, 조용히 나의 하루 가운데에 놓아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