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인연

공방에 온 하얀 손님, 두부 이야기

by 스틸앨리스

며칠 전, 공방 문이 활짝 열리더니 옆집 바버샵 사장님이 흰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들어오셨다.

“선생님, 이 아이 오늘 하루만 공방에 있을 수 있을까요?”

고개를 돌려보니 새하얀 털에 까만 눈동자, 마치 어린양처럼 온순해 보이는 강아지가 사장님의 품에 안겨 있었다. 길고 부드러운 꼬리를 살랑이며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얘는 누구예요?

“보호센터에서 임시보호 중인데요, 이름은 두부예요. 한 달간 제가 임보 하기로 했는데 ~

양평이가 질투가 심해서 짖어대는 통에 도저히 이발소에 같이 있을 수가 없어서요.

양평이는 바버샵의 귀여운 반려견이자 자타공인 영업부장. 시크한 성격이지만 이발소 분위기를 책임지던 녀석인데, 낯선 존재 앞에선 은근 예민해지는가 보다.

바버샵 사장님은 난감한 듯 보였지만 당연히 내가 봐줄 거라는,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2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나의 반려견, 코코가 문득 떠올랐다. 그리움이 늘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강아지만 보면 어김없이 만져보고 싶었던 나였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두부를 공방 안으로 들였다. 그렇게 두부는 하루 동안 '공방 임시 거주견'이 되었다.


처음엔 낯선 공간이 어색한지 공방 구석구석을 서성이던 두부. 그것도 잠시 ,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일까? 이내 꼬리를 흔들며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처음엔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고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오래전부터 다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 조금,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반려견을 살갑게 보살필 능력이 안될 것 같아 망설이던 마음도 조금. 두부를 만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유기견으로 버려진 아이들은 새로운 주인을 만나기까지 센터에서 고달프고 외로웠을 삶이 그려져서 안쓰러웠다. 비좁은 철창 안에서 연신 꼬리를 흔들었다는 이 녀석. 꼬리를 보니 털이 쓸려 뽀얀 핑크빛살이 드러나 있었다.

마음이 짠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주인이 안 생기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이 녀석을 데리고 있으면서 오만가지 생각들로 작업을 어떻게 했는지 조각난 천들은 내 바느질 책상 위에 흩어져 한참을 방치된 채 오후가 훌쩍 지나 있었다.


중간중간 배변을 위해 동네 산책도 두어 번 다녀오고,

먹을 것을 챙기고 물을 갈아주다

‘혹시 내일도 또 맡게 될까?’ 하는 걱정이 불쑥 떠올랐다.


그날 해가 기울 무렵, 마지막 산책을 나섰다.

코코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 함께 걷던, 공방 근처의 낯익은 그 공원. 이번엔 두부와 함께 천천히 걸었다.

같은 길인데 풍경은 조금 달랐다. 계절이 바뀌어서인지, 아니면 내 마음이 달라져서인지.


두부는 이따금 낯선 풀 냄새를 맡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서 문득, 코코의 눈동자가 겹쳐 보였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었다.

이 길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마음 한편이 저릿했지만 또 다른 한편은 따뜻했다.


코코와의 추억이 머물던 자리에 두부와의 새로운 기억이 내려앉는 순간. 이별은 끝이 아니라, 다른 사랑으로 이어지는 조용한 다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겁던 햇볕을 피해 공방으로 돌아온 두부와 나.

내가 천 조각을 손에 들고 바느질을 시작하자

두부는 조심스레 내 발치에 누워 조용히 숨을 고르며 졸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 햇살이 창가로 깊게 내려앉자

두부는 방석 위에서 작게 코를 골며 잠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낯선 강아지와의 단 하루라는 시간이어 쩌면 깊은 관계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아무 말 없이도 마음이 오가는 순간이 있다는 걸.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걱정도 되었다.


이 녀석이 다시 센터로 돌아가게 되면 어쩌지?

아니면 며칠이 될지 몰라도 내가 맡아 돌봐야 하는 건 아닐까? 아~~ 그럼 곤란한데.

두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 바쁜 공방일에 지장이 생기는 건 아닐지. 미리 걱정되는 마음이 오버랩되며 마음이 일렁였다. 벌써 정이 든 걸까?


그때, 사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두부, 키우겠다는 분이 나타났어요. 센터에서 내일 데려가신대요. 다행이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웃었다. “정말 다행이네요…”

좋은 주인이면 좋겠네요

그 한마디 속엔 하루 종일 복잡했던 감정이 녹아 있었다. 짧지만 따뜻했던 인연. 두부는 오늘, 내 공방에 작은 평화를 선물하고 떠난다.


공방 한편에 남아 있는 두부의 체온 같은 잔향.

낯선 하루가 따뜻해지는 건, 결국 누군가와 마음이 닿은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