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위태했다.
아직까지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었지만 내가 봐도, 이런 상태로 오래 버틸 수 있을까 싶었다.
사스, 메르스, 동일본 대지진, 코로나, 환율급등, 티몬사태, 전쟁 등 국내외 큰 이슈가 있을 때마다
문을 닫네 마네, 인원감축을 한다, 감봉을 한다, 단축근무를 한다.. 등등 여행사는 직격으로 타격을 받았고, 나는 항상 그곳에 있었다.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하지만, 그들에게 여행은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안 가도 그만이었다.
그래도 잘 버텨왔었다. 그래서 조금만 더 버텨내고 싶었다.
누구누구는 정리되고, 어떤 팀은 없어지고,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있을 거라는 흉흉한 말이 돌 때도,
나는 아니길 바랐다.
그리고 인사팀의 그가 나를 회의실로 부르는 순간, 아닌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내 눈을 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 아래로 위로 시선을 부지런히 옮기며,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인사팀의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 부장님, 부장님도 회사 상황을 잘 아시겠지만, 이번에 회사가 조직을...... "
뻔한 얘기였기에 그의 말이 끝까지 들리지 않았다. 대신 마주 앉은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와 가까이 마주한건 딱 두 번. 입사할 때 근로계약서 작성을 위해, 그리고 바로 지금이다.
인사팀 그의 얼굴을 두 번째 마주하는 지금에서야 눈에 담는다. 이렇게 생겼었구나.
마지막 급여, 잔여연차 수당, 퇴직금, 얼마가 될지 모르는 위로금 등의 지급 일정을 설명해 주며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 여기에 사인해 주시면 되세요, 죄송합니다. " 딱히 그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죄송하다는 그에게
나는 사인을 하며 ' 잘 설명해 주셔서 감사하다 '라고 했다. 뭐가 감사한 걸까 이 와중에.
이놈의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는 직업병처럼 입에서 아무 때나 튀어나온다.
"지난해부터 누적적자가 너무 쌓여서, 이번에 체질개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그래도 이렇게 해서 잘 되면 대표님도 나가신 분들 먼저 복귀하는 방향으로 한다고 하셨어요. "
잘 되면..
나도 그랬었다.
십여 년 전, 지금의 인사팀 그 처럼, 나는 내 앞에 앉아있는 나보다 한참 어린 직원에게 말했었다.
"미안해 정희야. 회사가 너무 어려워서, 팀별로 인원감축 계획을 내라고 하네.."
정희는 지금의 나처럼 별 말을 안 했고, 의미 없이 테이블에 펼쳐놓은 다이어리를 바라보며 , 눈썹하나 찡그리지 않은 채 눈물만 뚝뚝 떨어뜨렸다. 큰 눈만큼이나 눈물방울도 컸다.
정희가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이런저런 상황이 안 맞았을 뿐이었다.
내가 그때 정희에게 어떤 말을 주저리주저리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확히 기억나는 건,
' 잘 되면 너를 꼭 다시 부를게 ' 였고, 정희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역시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구조조정이나 해고 같은 말들이 들리면 그때 정희의 큰 눈물방울이 생각난다.
인사팀 그와 미팅 후 자리로 돌아오니 퇴근이 두어 시간 남았다.
그 두어 시간 동안 나는 평소와 같이 해야 할 업무를 마치고, 평소와 같은 시간에 항상 타던 버스를 탔지만, 이제 '반복되는 일상'이라 말할 수 없는 '퇴근길'이었다.
한여름 저녁,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습하고 후끈한 공기가 얼굴을 감쌌다.
에어컨을 틀고 옷을 갈아입고, 집안 여기저기를 살폈다. 역시나 있었다.
이놈의 러브버그.
죽어있는 놈, 힘없이 움직이는 놈 몇 마리가 베란다에 있었다. 그나마 출근하기 전 살충제를 뿌리고 나가서
날아다니는 놈은 없었다.
대체 어디에서 들어오는 걸까. 방충망이 있고, 그렇다고 현관문을 자주 여닫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대체 어디서.. 혹시 자연발생인 걸까? 하긴, 아주 가끔 들어오는 파리도 나에겐 의문이었다.
베란다에 가만히 서서 오래된 방충망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혹시 방충망이 뚫렸을지도 모른다!
위에서 아래로 꼼꼼히 살펴보던 중 맨 아래 방충망 틀에 작은 구멍이 있는 걸 발견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케이블선 등을 통과시키기 위한 구멍인 것 같았다.
바로 이거다! 여기로 이놈들이 들어왔던 거다. 그리고 순간 며칠 전에 봤던 유튜브 썸네일이 생각났다.
'창틀에 물티슈만 끼워놓으면 벌레걱정이 없다' 뭐 그런 내용이었다.
이제 모든 게 이해됐다. 나는 재빨리 물티슈 몇 장을 뽑아와서 그 작은 구멍을 온 정성을 다해 꽁꽁 막았다.
집안 모든 방충망에 있는 그 작은 구멍을 모두.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너무 기뻤다. 러브버그 퇴치에 성공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까지 좋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뛸 듯이 좋았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나는 정리해고를 통보받았고, 지금 나는 잠시의 순간이지만 그저 신이 날 뿐이다.
러브버그 애벌레는 썩은 식물등을 분해해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해충을 제거한다고 한다.
성충은 꽃가루를 옮겨 식물번식에 기여하고, 천적의 먹이원이 되어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는 익충이라고
한다.
하지만 떼로 몰려다니고, 어디든 출몰하고 달라붙는 러브버그가, 아무리 익충이라고 해도,
사람들에게는 해충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러브버그는 익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