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스로에 집중하는 삶
나는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은 해외항공권을 예약하고 발권하는 일을 한다.
여행사 업무 중에 항공업무는 전문 교육도 받아야 하고, 자격증도 따야 하는, 나름 이 업계의 전문직에 속한다.
물론 , 모든 일이 그렇듯 이 업무 또한 많은 자동화가 이루어져서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처리되는 부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여러분이 해외여행을 갈 때, 웹사이트를 통해 항공권을 예약하고 구매하고, 전자항공권을 받아보는 과정은 거의 시스템에서 돌아가는 일이다.
다만, 아직은 사람이 해야만 하는 일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벌써 이 일을 시작한 지도 25년이 지났다.
25년이 넘도록 나는, 코로나로 인해 한 2년 정도 쉰 걸 빼고는, 한 번도 쉬어 본 적이 없다.
물론 회사는 여러 번 옮겼지만, 거의 새로운 회사를 정해놓고 퇴사를 했기 때문에, 퇴사와 동시에 입사를 했다. 때로는 이런저런 이유로 이 업계를 떠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 나는 떠나지 못했다.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었으니까. 솔직히 다른 일에 도전할 엄두가 나질 않았으니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재작년 가을부터 다니기 시작했으니, 아직 2년이 채 안되었다.
복잡한 시내 한복판에 있는 오래된 건물이었지만 인테리어를 한 사무실 내부는 건물의 외관에 비해 깔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쉴 새 없이 닦고 정리하고 관리해 주시는 미화 여사님 덕분에 사무실은 항상 쾌적하다.
6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여사님은 약간 다리가 불편하시지만 한시도 쉬지 않고 사무실 구석구석을 청소하신다
탕비실의 정수기나 커피머신은 커피 한 방울 튄 흔적 없이 항상 반짝반짝했고, 직원들이 텀블러나 도시락통을 설거지하는 싱크대는 물 한 방울 남아있을 새가 없었다.
또 높은 창틀의 먼지까지도 닦아야 한다며 긴 막대에 걸레를 끼워 그 높은 곳의 먼지를 일일이 닦아 내셨다.
사무실 곳곳에서 돌아가는 공기청정기와 가습기 관리는 기본이다.
어느 날 탕비실 냉장고에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내일 냉장고 청소 예정입니다. 버리실 물건은 여기에 내놓아주시면 제가 버리겠습니다.~'
하긴 냉장고에는 직원들이 각자 쟁여놓은 음식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이 아주 많을 거라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여사님이 냉장고 청소를 한다는 것에 감동받을 일은 아니었다.
내 눈길을 끈 건,
몇 자 안 되는 그 안내문구의 글씨였다. 그냥 잘 쓴 글씨가 아니라, 글자를 아름답게 쓰는 캘리그래피에 가까워 보이는 글씨체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누가 써준 건가....
며칠 후 텀블러에 물을 채우러 탕비실에 들어가니 여사님이 화초 잎을 마른수건으로 닦고 계셨다.
나는 그 글씨가 궁금해서 인사를 드리고 여사님께 물어봤다.
"여사님, 그때 냉장고에 붙여 놓으셨던 그 글씨 너무 예쁘던데, 직접 쓰신 거예요?"
" 네, 제가 썼죠 " 작은 떨림이 있는 맑은 음성으로 말씀하시며 작게 웃으셨다. 여사님과는 전에도 종종 인사를 나누며 가벼운 대화를 나눈 적이 있고 항상 그 작은 떨림이 인상적이었다.
" 어머, 혹시 캘리그래피 같은 거 배우신 거예요? "
" 아뇨, 평생 그림만 그리고 살았지, 다른 거 뭐 배운 게 없어요. "
" 그림이요? 여사님 그럼 화가셨어요? "
" 네, 그림만 그리고, 가르치고 살았어요. 다른 건 아무것도 못해요 "
" 아, 예술을 하셔서 글씨도 멋지게 쓰시는 건가 봐요"
왜 더 이상 그림을 안 그리시는 건지, 아니면 지금도 취미로 그리시는 건지.. 등 더 이상 여쭙지는 않았다.
화가였던 미화 여사님.
그분이 어떤 일을 했었을지 궁금하지 않았다. 아니 궁금하지 않았다기보다는 , 그냥 계속해오던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막연히 생각했었을지도 모른다.
나였다면 할 수 있었을까.
내가 더 이상 지금의 내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나는 그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을까.
큰 용기를 내어도 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나는 그동안 나 스스로에게 보이는 모습 보다, 남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에 신경 쓰고 부끄러워하는 일이.. 더 많았다.
지금의 일을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하시는, 화가였던 여사님을 보며 나는 '나 스스로에 집중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탕비실 창가에는 여사님이 직접 키우는 화초가 여러 개의 물병과 화분에 담가져 있다.
가끔은 직원들에게 나눠 주시며 말씀하신다.
" 또 필요하면 얘기해요 더 드릴게요~ "
화초 말고, 여사님의 그림이 한번 보고 싶어요,.
라고 속으로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