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기를 마치며

by 유지니안

안녕하세요. 유지니안입니다.


드디어 적응기가 막을 내렸습니다.

미국 땅에 새로 도착한 세 가족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게 '생존기'였다면, '적응기'는 의식주를 넘어 미국의 문화와 시스템, 나아가 이웃들과의 관계까지,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고민했던 흔적을 담았습니다.


DPNS라는 부모 참여형 어린이집을 통해 참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물론 커뮤니티에 녹아들어가기까지 정말 힘들었지요. 극I인 저에게 있어 캘리포니아 특유의 '친밀감'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아이가 8살이 넘은 후에 미국에 왔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정규 커리큘럼이 있는 학교에 속할 수도 있고, 예산적인 부분도 당연히 저렴하구요. 주변에 한국인 자녀분들도 다들 초등학생 때 오는것 같더라구요.

하지만 마침 어린이집에 다닐 나이에 미국에 온 덕분에, 물론 너무 힘들었지만, 엘리 뿐 아니라 저 역시 많이 경험하고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엘리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영어를 다 까먹었습니다^^ 무의식 속에라도 남아있기를 바랄 뿐에요.)


가장 힘들었던 건 역시, 제 마음 속 별 하나가 꺼졌을 때 아닌가 싶어요. 저, 정말로 미국에서 박사 공부를 하는 것이 꿈이었거든요. 더 일찍 했어야 하는데, 부모님의 반대도 심했고 취직하느라 미루고 결혼하느라 미루고 아이 낳느라 미루고 육아하느라 미루고... 마지막 골든타임조차도 남편 서포트하느라 놓치고 말았네요. 저를 가르치셨던 교수님들을 찾아뵈면 '왜 미국에 있을 때 안했냐'고 하시지만... 그 시대에는 육아라는 것에 대한 성역할이 명확하게 정해져있었으니까요.

여담이지만, 저는 지금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어요. 이른 나이는 아니지만 아직 도전을 멈추기에는 젊은 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다니고 있답니다.


3부는 "이방인-데이비스 737 발전기"입니다. 미국에서 우리 가족이 어떻게 발전해나갔는지를 담으려고 합니다. 앞서 씨를 뿌려둔 엘리의 DPNS 생활 및 놀이과 남편의 bar exam 준비에 대해 '아내'인 제 관점에서 어떤 노력이 필요했는지 그리고 그 감정은 어땠는지를 쓰고 싶어요.


남은 제 이야기도 즐겁게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지니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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