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사는 동네 5분 거리에는 언니 내외가 살고 있습니다.
언니는 저보다 6살이나 많고 중간에 4살 차이 오빠가 있지만 미국에 살고 있어서 거의 무늬만 자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막내입니다만.. 희한하게 엄마는 모든 일을 저에게 의논합니다.
집안 대소사는 물론이고 쿠*에서 엄마가 사고 싶은 물건을 주문하는 일도 저에게 부탁하시곤 합니다.
언니는 아직 중학교 교사 정년퇴임 전이라 바쁘고 상대적으로 프리랜서인 제가 시간여유가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엄마는 가까이 사는 언니보다 저를 더 심적으로 가깝고 편하게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엄마가 거동이 불편하셔서 아빠가 살림을 도맡아 하신 지 10년째..
엄마는 물건 하나하나 살 때마다 아빠 눈치가 보이신다며 엄마가 사고 싶은 화장품이나 다이어트에 필요한 '비에**'같은 유산균도 몰래 저에게 부탁하십니다. 아빠가 "그런 효과도 없는 쓸데없는 것은 뭐 하러 사냐"고 면박을 주신다고 하네요..
거동이 불편한 데다가 어깨와 무릎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달고 사는 엄마는 몸이 많이 아프고 힘든 날은 마음까지 우울해져서 저에게 전화해 한참을 울다가 웃다가 하시며 하소연을 하십니다.
나도 같이 울며 웃으며 맞장구를 쳐드리곤 해야 하죠.
가끔 저도 바쁜 날은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날은 엄마의 전화를 빨리 끊으려고 "엄마.. 일본에서 전화 들어온다." 하면서 대화를 빨리 마무리하곤 합니다.
엄마는 "응 그래.. 미안미안." 하면서 전화를 끊으십니다.
끊고 나면 후회되고 엄마한테 미안해집니다.
명절이 다가오면 엄마 신경 안 쓰시게 전이나 갈비찜 등 명절음식을 '마켓**'에서 예약해 놓는 일도 제 일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빠의 보양식을 주문하는 일도 제 일이며.. 아빠가 기운이 없으시다고 하면 '쿠팡**'등 배달앱에 들어가서 엄마아빠 집 주소를 등록하고 '장어구이' 같은 보양식을 주문해 나르는 일도 제 일입니다.
계속 이 일을 맡아하다 보니 엄마아빠는 이제 당연한 듯 저에게 얘기하시고, 심지어 큰 딸인 언니마저도 저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뭐 부모님 챙기는 데 위아래가 있냐?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생각하다가도.. "아 다들 너무 하네~" 싶을 때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느 날 친정에 간 날, 그날도 여느 때처럼 저녁 먹고 설거지를 마치고 집 청소도 깔끔히 마치고 나서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잠깐만 와보라고 하시며 내 손목을 잡아끌고 엄마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문을 닫으시더니 제 손에 뭔가를 쥐어주셨습니다. 언니 모르게 빨리 주머니에 넣으라고 하셨어요.
"언니도 아빠도 모르는 거니까 조용히 가지고 있다가 필요한 일 생기면 요긴하게 써"라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뭔지 확인도 하지 못하고 친정집을 나와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주머니를 확인해 봤습니다.
주머니에는 이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가로 5센티 세로 6~7센티정도 되는 꽤 묵직한 금거북이였습니다.
오는 길에 엄마에게 문자 한 통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항상 엄마 챙겨주고 신경 써주는 우리 막내야 늘 고맙다. 바쁜데 엄마전화받아주고 투정도 받아주느라 힘들지? 심적으로 언니보다 네가 가까워서 너에게 의지하고 있다마는 한 번도 짜증 내지 않고 받아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이 거북이는 엄마가 옛날에 외할머니 얼마 안 되는 재산 처분하면서 받은 작은 돈 중에서 만일을 위해 사 둔 금거북이다.
엄마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노인넨데 우리 착한 막내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 때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이니, 김서방에게도 말하지 말고 정말 너 개인적으로 돈 필요한 일 있을 때 요긴하게 팔아서 쓰기 바란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딸~
엄마의 문자를 받고 저는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 참을 울었네요.
엄마마음도 모르고 은근히 짜증스럽게 생각했던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못된 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엄마와 나 사이에는 가족들 아무도 모르는 '금거북이'라는 비밀이 생겼습니다.
저 거북이를 받은 후로 언니를 볼 때마다 '언니~ 난 엄마한테 금거북이' 받은 딸이야~ 부럽지? ㅋㅋ'
하고 속으로 웃고 있습니다.
이런 저 너무 속물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