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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을 앞둔 '얼리어답터'

아빠의 신문물 사랑은 지금도 계속된다.

by JIPPIL HAN

우리 아빠는 87세!! 낼모레 90을 바라보고 있는 초노년 이시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항상 신문물을 가장 먼저 구매하시는 자타공인 '얼리어답터' 되시겠다.


아빤 다른 일반 노인분들과는 다르다.

인터넷을 잘 다루지 못하시는 친구분들과 달리, 동창회 사이트에 '회보'나 '공지사항' 게재 등을 도맡아 하신다. 사실 동창회 친구분들이 거의 돌아가시고 몇 분 안 남으셨다는 게 슬픈 현실이긴 하지만..


아빠는 그 연세에도 유튜브 제작은 물론 릴스제작, AI를 이용해 손주들 사진을 변형시킨 재밌는 동영상들을 제작하셔서 우리 가족 단체카톡에 올리시곤 해 항상 우리를 웃게 만드신다.


생각해 보면 아빠의 신문물 사랑은 아주 오래전부터였다


1980년대 초 컬러TV가 처음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절.

아빠는 고등학교 선생님 월급으로는 엄두도 나지 않을 컬러TV를 덜컥 장만하시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있던 기억이 난다.

당시 TV 가격이 50만 원에 육박해 선생님 봉급(20만 원 이하) 두 달치를 넘는 금액이었다고 하니 엄마가 화내시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컬러TV는 우리 생활의 질을 바꿔 놓았고 철없는 우리 삼 남매는 컬러TV 있는 우리 집이 너무 자랑스러워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느라 입이 마를 지경이었다.


아빠는 그 이후로도 동네 최초로 출퇴근길에 소니 '워크맨'을 들고 다니셨고, CD 플레이어나 캠코더가 나오기가 무섭게 장만하셨으며, 휴대폰이 일반적으로 보급이 되기도 전에 이미 벽돌만 한 휴대폰을 들고 다니셨다.


처음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동창들과 산행에 나섰을 때, 친구분들이 “너 벌써 보청기 쓰냐?” 하고 놀라셨다는 일화도 있다.


아빤 그런 분이시다.

신문물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연세가 드시고 좀 덜해지셨나 생각하겠지만 아빠의 신문물 사랑은 여전하다.

휴대폰이 새로 나올 때마다 우리 삼 남매는 아빠 생신날 선물로 '신상 휴대폰'을 사드릴까 하고 가보면 이미 아빤 가장 최신폰을 쓰고 계셨다.

얼마 전에도 스마트워치를 바꿔드릴까 하고 가보니 이미 2025년 출시된 '울** 스마트워치'를 차고 계셨다.


그런 아빠가 나는 지금도 너무 신기하다. 나는 50 넘으니 설명서조차 읽기 귀찮고, 뭔가 새로운 전자기기를 장만하는 건 꽤나 부담스러운 일인데 말이다.


" 아빠, 설명서 읽기 너무 귀찮지 않아? 난 세상 귀찮아서 맨날 애들 시키는데." 하면

" 그게 얼마나 재밌는 일인데 애들을 시켜~ 난 신제품 새 기능 익히는 게 세상에서 젤 재밌더라"

라고 대답하신다.

이렇다 보니 전자기기가 할아버지에서 엄마, 손주들에게로 대물림되기도 한다.

한 세대 지난 휴대폰은 엄마에게, 스마트워치는 우리 큰딸, 1세대 애플 에어*맥스는 춤추는 우리 딸에게로 대물림되었다.

한 세대 지난 기기라고는 하지만 거의 신제품에 가까운 제품이라 다음에는 할아버지가 뭘 구매하실까 기대하고 눈여겨보는 게 우리 아이들의 일상이 되었다.


외가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 또 뭐 새로 사신 거 없어요? 하고 물으

아빤 활짝 웃으시며 "왜 없어 이런 게 있지? " 하면서 자랑하신다.


신제품만 사들이는 아빠를 못마땅해하시던 엄마도 요즘은 아빠와 같이 신문물의 파라다이스에서 행복을 만끽하고 계신다.

몸이 불편해 영화관에 못 가는 엄마를 위해 아빠는 AI TV를 장만하시고, 드라마가 시작되면 전자레인지에 팝콘을 튀겨 나란히 앉아 시청하신다. 신문물은 어느새 부부의 작은 낙이자 행복이 된 것이다.


나는 아빠의 식지 않는 신문물 사랑은 어떤 마음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시대와 끊임없이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며 변화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삶의 태도이다.

그 태도가 아흔을 앞둔 연세에도 총기를 유지하게 하고 건강을 지켜주는 힘이 아닐까.


나는 바란다. 앞으로도 아버지의 신문물 사랑이 계속 이어지기를. 그 호기심과 열정이야말로 우리 가족에게 아빠가 아직도 건강하시다는 지표이자 가장 큰 선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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