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금요일 아침.
엄마에게 연락이 올 시간이구나.
'뭐 해? 바쁘니? '
'아니 괜찮아 엄마. 아침은 드셨어? 오늘 몸은 좀 어때?'
'몸이 더 아파.. 죽을 때까지 고통을 벗 삼아 참으며 살려고 해도 너무 아프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 많이 아파? "
" 응 많이 아파. 진통제를 하루 2알씩 먹고 신경안정제까지 먹는데도 어떤 날은 못 견디게 아파.
이대로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한다."
또 무서운 소리를 하신다.
오늘은 또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구나.
엄마의 병명은 '만성 통증증후군'.. 말하자면 '골병'인 샘이다.
수십 년의 시집살이로 차곡차곡 다져진 골병인 것이다.
어떤 날은 참을 수 있을 정도라 또 살아가고, 어떤 날은 견디기 힘들 정도라고 하셨다.
" 큰일이네 어떡하지? 아빤 뭐 하셔?"
" 아빤 친구들 모임 가셨지"
아빠는 엄마가 혼자 계시는 게 걱정돼 웬만해선 외출을 자제하시지만, 일주일에 딱 한번 친구들 모임에 나가신다. 아빠도 숨 쉴 구멍이 있으셔야 엄마를 돌볼 힘을 얻으시겠지.
아빠가 집을 비우시는 날이면 엄마는 나에게 어김없이 카톡을 하신다.
전화해 달라는 표시인 것 같아 나는 늘 바로 전화를 한다.
엄마는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얘기하면서, 거기에 아빠의 '험담'도 살짝씩 끼워 넣는다.
오늘의 주제는,
두 달 전 전문 청소업체에 맡겨 대청소할 때 떼어놓은 커튼을 다시 달아야 하는데 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는 거동이 불편해 불가하며, 아빠도 요즘 무릎이 안 좋으셔서 커튼을 달 생각을 안 하신단다.
가까이 사는 언니한테 부탁했더니 주말에 형부를 불러오겠다고 했단다.
그까짓 거 커튼봉에 커튼 고리 끼는 게 뭐가 어렵다고 형부까지 불러오겠다는 건지 바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만 멀리 사는 딸인 내가 이러쿵저러쿵 할 문제는 아니지 하고 생각하는데..
엄마가 그때 갑자기 '커튼 하나 내 맘대로 달지 못하는 내 몸뚱이가 한심하다'며 울음을 터뜨리셨다.
소리까지 내서 한참을 '흑흑' 우신다.
젊은 시절 우리 엄마는 가구 배치나 냉장고 위치를 혼자 바꿀 만큼 힘센 장사였다.
그러나 그것이 엄마에겐 시집살이 스트레스의 해소법 중 하나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러던 엄마가 지금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얼마나 한심하고 서럽게 느껴지실까..
"엄마, 팔십 노인이 커튼 달기가 어디 쉬워? 못하는 게 당연하지 뭐가 한심해." 하며
엄마를 위로한다.
엄마를 겨우 진정시켰더니 이젠 슬쩍 아빠 '험담'을 늘어놓으신다.
몸이 아프니 아빠가 생각 없이 내뱉는 말투에도 곧잘 상처를 받으신다.
엄마가 아빠 아침이라도 차려드리고 싶어서 주방에서 뭘 좀 하시려고 하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고 나서 또 아플 거면서 뭘 자꾸 해서 사람 신경 쓰이게 해!"라고 호통을 치셔서
그게 너무 서러우시다며 또 우신다.
그 마음이 안타까워 나도 같이 훌쩍거리며 엄마를 위로했다.
그런데 별안간 화제가 바뀐다.
"야 근데 어제 이혼숙려캠프 봤니? 야~ 진짜 어떻게 저런 여자가 다 있냐?
세상에 뭐 그런 놈의 남편이 다 있다니? 그러고 보면 네 아빠는 천사지 천사" 이러신다.
뭐지? 이 느닷없는 대화의 흐름은..
엄마도 멋쩍으셨는지 갑자기 깔깔대고 웃으신다.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울다가 넋두리하다가.. 갑자기 웃다가.. 또 울고..
아빠가 친구들 모임에 가시는 매주 금요일 오전시간 나는 엄마의 '모노드라마'의 관객이 된다.
엄마의 모노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시부모님 모시면서 온몸에 골병이 들어버린 엄마가 너무 안쓰럽고 불쌍하다가도,
당신 몸을 왜 저렇게까지 혹사시켰는지 화가 나기도 한다.
엄마의 저런 투정과 응석을 매일 곁에서 받아주고 있는 아빠가 안쓰럽기도 하다가도,
엄마를 데려왔으면 공주처럼 모셔주지 왜 저렇게 고생을 시켰나 원망스럽기도 하다.
연세가 드시고 몸이 점점 더 아파질수록 한해 한해 점점 더 어린애 같아지는 우리 엄마.
엄마의 모노드라마를 보며 그저 관객처럼 리엑션 하고, 함께 울어드리는 일 말고는 엄마의 통증을 줄여줄 그
무엇도 해드릴 게 없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다음 주 엄마의 모노드라마 내용은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드라마이길 기대하며 전화를 끊는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전화를 든 손이 시큰해 손목을 돌려본다.
한 시간의 모노드라마로 엄마 맘은 좀 후련해지셨으려나?
*모노드라마: 한 사람의 배우로 상연되는 극. 무언의 등장인물에 의해 진행되는 공연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