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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꾼 아빠와 팔불출 엄마

by JIPPIL HAN

오늘은 자궁근종의 크기 관찰을 위한 정기검진 있는 날.


떨리는 맘으로 검사대에 누웠다.

초음파를 하시면서 '음.. 끄덕끄덕, 또 음.. 끄덕끄덕' 하신다.

뭐지? 안 좋은 건가?


"자~ 옷 갈아입으시고 자리에서 설명해 드릴게요."


'아 왜 말을 안 해주셔 불안하게'


옷을 갈아입고 앉았다.


" 근종이 지난번 검사 때보다 살짝 작아졌네요. 새로 생긴 근종도 크기 변화 없이 작게 그대로 있고요."

자궁벽 깨끗하고요, 내막 두께도 적당 합니다. 난소 쪽도 문제없고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아니, 그럴 거면 아까 왜 그렇게 분위기를 잡으셨대…’


근종이 줄었다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앞으로는 6개월에 한 번만 체크하면 된다는 소식에 오래간만에 기분이 좋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분 좋게 차 안에서 블루투스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 따RRRRRRRRRRRRRRR~ 따RRRRRRRRRRRRRR~ 따RRRRRRRRRRRRRRRR"


벨이 울린치 한참 만에 받으신다.


엄마: 여보세요~ 응~ 막내? (누구야? 하는 아빠 소리) 막내야 여보..


웬일로 엄마 목소리가 밝다.


딸: 뭐 하셔? 전화를 왜 이렇게 늦게 받으신다~


엄마: 집이 하도 넓어서 걸어오려면 하루 걸리지. 하하하..

무릎 때문에 빨리 걷지를 못하니까 전화가 울려도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야..

빨리 받고 싶어도 어쩔 수 없다 잉?..


: 아이고 안되지 안되지~ 얼마든지 기다려 드릴 테니까 천천히 받으셔 알았지?

아빠는 뭐 하셔?


엄마: 아빠는 점심 준비하시지.. 국수 삶아 주신다고 땀 뻘뻘 흘리고 계신다.


딸: 아빠가 국수도 삶으셔? 이제 못하는 게 없으시네 아주.


엄마: 집안일 다 하시고 설거지도 도맡아 하시고, 어제는 엄마 대학동창 모임이 있었는데 택시 같이 타고

갔다가 기다리셨다가 또 같이 데리고 와 주셨지..

괜찮다고 혼자 택시 탈 수 있다고 해도 굳이 같이 따라가시네.. 거길..


딸: 엄마 지금 나한테 자랑하는 거야? 아주 사랑꾼 나셨네?


엄마: 자랑이지 그럼. 남편은 딱 네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딸: 엄마. 나 결혼한 지 25년이야. 이미 늦었어 그런 사람은..


엄마: 김서방도 나중에 그렇게 해 주겠지..


딸: 아이고~ 퍽도 해주겠다.

엄마 오늘따라 아빠 자랑이 아주 격하네.. 어깨는 괜찮은 거야?


엄마: 양쪽 날개 다 아픈데 뭐.. 아빠가 다 손발이 되어주시니까 그냥저냥 버티는 거지.


오늘은 팔불출 처럼 아빠 자랑을 하는 내내 엄마의 입가의 미소가 번지는 것 같았다.

엄마의 몸과 마음의 날씨가 맑음인 모양이다.

저러다가 또 아빠한테 서운한 소리 한마디 들으면 나한테 쪼르르 전화해서 삐죽거리며 아빠 흉을 보시겠지..


귀여운 우리 엄마 아빠... 부디 오늘처럼 맑은 날만 계속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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