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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지막 자존심

by JIPPIL HAN

엄마는 회전근 파열로 어깨 수술을 하셨고,

척추 협착증에, 무릎 연골이 다 닳아 없어져 인공관절 수술도 했습니다.

온몸이 거의 성한 데가 없다고 봐야죠.


30년 넘는 시집살이에 할머니 뇌출혈 병간호, 할아버지 방광암 병간호로 몸이 부서지게 일만 한 엄마는 시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니 당신의 몸도 하나둘 망가지더니, 결국 잠재되어 있던 수많은 질병들이 하나둘씩 존재감을 뿜어내기 시작했었죠.


극심한 통증 때문에 어깨부터 무릎까지 차례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수술이 정말 안 맞는 특이체질이라 수술 후 통증이 더 심해진 케이스라고 합니다.


좋다는 병원을 다 다녀봐도 나아지지 않자,

이제는 통증을 '하나님이 주신 오랜 벗'이라 생각하고,

하루하루 그 친구들을 진통제로 살살 달래면서 살아간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아픈 엄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지금까지 변함없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화장'입니다.


84세의 연세에도 엄마는 아침마다 곱게 화장을 합니다.

외출할 일이 없는데도 베이스뿐 아니라 볼터치에 립스틱 같은 색조 화장으로로 마무리합니다.


"몸도 아파 죽겠는데 화장은 뭐 하려 해 귀찮게?" 하고 아빠가 얘기하시면..


"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야. 화장도 못하는 날 그날은 정말 끝이야. 화장을 안 하면 내가 더 아픈 사람 같아. 정말 내일 죽을 날 받아 놓은 사람 같다고.."

은발머리에 피부가 하얀 엄마는 화장을 하고 나면 아직도 너무 뽀얗고 예뻐서 귀부인이 따로 없습니다.

(저 위 사진의 여사님과 딱 비슷한 이미지입니다)


엄마의 얼굴만 보면 전혀 아픈 환자 같지 않습니다.


엄마생신이나 어버이날에 저는 건강식품이나 몸에 좋은 음식이 아니라, '요즘 핫한 브랜드의 화장품이나 유행하는 최신 미용기기'를 선물합니다.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느낌 아니까요~


선물을 받고 해맑게 좋아하는 엄마는 제 눈에는 그저 사랑받고 싶은 여자 그 자체입니다.


몸의 온갖 통증으로 진통제를 달고 사는 고통스럽고 힘겨운 삶이지만..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 아름답고 싶은 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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