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엄마의 태몽일기

by 산속


내가 길을 잃을 때마다 떠올리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나의 엄마입니다. 화려한 도시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엄마는, 오직 아빠 하나만 믿고 연고도 없는 낯선 타향 시골로 시집을 오셨습니다. 말도 설고 마음 둘 곳도 없는 그곳에서 엄마는 아빠와 살며 많이 힘들고 외로웠노라고, 가끔 그 시절의 시린 속내를 털어놓으시곤 했습니다.

​그 모진 세월을 엄마는 어떻게 견디셨을까요. 평생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흙투성이 손으로 자식들을 키워낸 엄마의 정성은, 당신의 외로움을 깎아 만든 보석이었습니다. 지금은 마음의 병이 깊어지셨지만, 그 아픈 와중에도 엄마는 내 손을 잡으면 "고생했다"며 눈시울을 붉히십니다. 그리고 잊지 않고 물으십니다. "밥은 꼭 챙겨 먹었니?" 엄마에게 밥은 곧 사랑이었고, 자식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절박한 기도였습니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비로소 궁금해진 것이 있었습니다. "엄마, 나 태어날 때 어땠어? 내 태몽은 뭐야?"
​어느 날 나의 물음에 엄마는 굽은 허리를 펴고 아주 먼 기억을 어루만지듯 미소 지으셨습니다. 엄마의 꿈속, 햇살이 부서지는 평화로운 논두렁에서 아주 크고 빛나는 구렁이 한 마리를 보셨다고 했습니다. 예로부터 큰 구렁이는 지혜롭고 큰 인물이 될 아이를 상징한다던데, 엄마는 그 황금빛 생명이 당신의 품으로 들어오는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는 길조임을 직감하셨다고 합니다.

​부산에서의 화려한 삶을 뒤로하고 낯선 시골에서 외로움과 싸우던 엄마에게, 나는 그저 한 명의 자식이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던 그날,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척박한 시골 살이와 고된 농사일 속에서도 나라는 존재는 엄마를 다시 웃게 하는 유일한 빛이었고, 엄마가 그 모진 세월을 버티게 한 단 하나의 이유였던 것입니다.

​이제 내가 나의 아이를 보며 엄마의 그 마음을 배웁니다. 아이가 사춘기라는 문을 닫고 들어가 나를 외롭게 할 때도, 나는 아이가 처음 내 품에 안겼던 그 경이로운 순간을 떠올립니다. 나를 낳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던 나의 엄마처럼, 나 또한 이 아이를 낳아 비로소 완성된 행복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논두렁에서 커다란 구렁이를 보며 축복처럼 나를 기다렸을 엄마의 마음이, 이제는 나의 아이를 향한 나의 기도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태몽과 탄생을 기억하며, 누군가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었음을 확인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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