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소망

by 산속


엄마가 꾼 태몽은 거창한 예언인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배우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나를 향한 엄마의 가장 첫 번째 '응원'이었다는 것을요.
​오늘도 마음속에서 울고 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저만의 속도로 허물을 벗어봅니다. 저와 닮은 고민을 가진 당신에게도, 이 글이 작은 위로의 온기가 되길 바랍니다."



​빛바랜 일기장 속에는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 엄마가 먼저 마주했던 찬란한 기록 하나가 박혀 있다. 논두렁 한가운데를 묵직하게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는 거대한 구렁이 한 마리. 엄마는 그 압도적인 기운에 가슴이 벅차올라, 아직 얼굴조차 모르는 나를 향해 생애 첫 번째 기도를 시작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태몽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구렁이라면 자고로 영험하고 커다란 존재인데, 현실의 나는 그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자꾸만 작아졌기 때문이다. 용처럼 하늘을 날아오르는 화려한 삶을 살지도, 누군가에게 거대한 영향력을 주는 인물이 되지도 못한 채, 나는 그저 평범한 일상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한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 동래의 고즈넉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다 문득 깨달았다. 쌉싸름한 향기 속에 나의 고민과 한숨이 녹아내리는 것을 보며, 나는 비로소 엄마의 그 오래된 소망을 다시 읽어낼 수 있었다.

​엄마가 꾼 구렁이는 화려한 궁궐이 아닌 '논두렁' 위에 있었다. 그것은 세상의 시선이 닿는 높은 곳이 아니라, 가장 낮고 평범한 삶의 터전을 든든하게 지키는 존재였다. 엄마의 소망은 내가 대단한 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음을, 이제야 나는 안다.


엄마가 꾼 구렁이는 화려한 궁궐이 아닌 '논두렁' 위에 있었다. 그것은 세상의 시선이 닿는 높은 곳이 아니라, 가장 낮고 평범한 삶의 터전을 든든하게 지키는 존재였다. 엄마의 소망은 내가 대단한 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음을, 이제야 나는 안다.
​나는 줄곧 생각했다. 나의 눈물은 겉으로 쉽게 표현되어선 안 된다고. 그래서 소리 내어 우는 대신 뜨거운 커피 한


잔에 마음을 적신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없지만, 잔 속의 검은 파도는 내 안의 슬픔을 고스란히 닮아 있다. 오늘 나의 커피는, 나의 마음속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물이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이유는, 내가 이제 '나를 볼 줄 아는 사람의 언어'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구렁이가 소리 없이 허물을 벗으며 자라듯, 나 또한 매일 밤 문장을 쓰며 나를 가두었던 두려움과 자기 의심이라는 낡은 허물들을 하나씩 벗어내고 있다.

​엄마의 태몽은 예언이 아니라 축복이었다. "기죽지 말고, 네 자리를 지키며, 너만의 속도로 허물을 벗으며 살아가렴."

​커피 잔 속에 담긴 마음의 눈물을 닦아내고 일어서는 길. 현관 거울 속의 나에게 어색하지만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엄마의 소망은 멀리 있지 않았다. 오늘 하루를 정직하게 살아내고, 나 자신과 화해하며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나는 비로소 내 안의 구렁이처럼 묵직하고 단단한 '진짜 나'를 만나고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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