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제41장 - 침묵은 결핍인가, 가능성인가

제41장 - 침묵은 결핍인가, 가능성인가

by 리얼흐름

카페 디알로고스는 오늘 하루 동안 음악도,

종이 넘기는 소리도 없었다.

진우는 주문도 말없이 손짓으로 주고받았고,

라빈은 커피를 내리는 물소리만으로 리듬을 유지했다.

말 없는 하루는 무언가 부족한 것 같기도,

차오른 것 같기도 했다.


첫 번째 손님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고요한 눈빛, 간결한 손동작.

그는 앉자마자 단 한 문장을 내뱉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 하죠.

말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으니까요.”


라빈이 속삭이듯 물었다.

“그럼 침묵은 진실을 포기하는 건가요?”


비트겐슈타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침묵은 말보다 더 넓은 진실의 여백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말하려다,

진실을 흩뜨리곤 하죠.

'말할 수 없는 것' 그 자체를 인정해야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곧이어 수전 손택이 들어섰다.

감각적인 셔츠, 붓 대신 가위를 든 듯한 시선.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책을 폈다.

그녀의 책 '침묵의 미학'이라는 에세이였다.

“침묵은 감정의 마지막 언어입니다.

말은 때때로 침묵을 해치는 도구가 되죠.

진짜 예술은 설명되지 않을 때 가장 강합니다.”


진우가 조용히 물었다.

“하지만 침묵은 때로 오해를 낳기도 하잖아요?”


손택은 묘하게 웃었다.

“맞아요.

그래서 침묵은 무책임해질 수도 있고,

동시에 최고의 공감일 수도 있죠.

그건 상황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예요.”


그때 마지막 손님, 한 무명의 랍비가 들어섰다.


카페디41비트겐손택랍비.png


검은 모자, 조용한 걸음, 눈매는 마치 쉼표 같았다.

그는 라빈이 내린 차를 천천히 마시며 말했다.

“하느님은 세상을 말로 창조했지만,

인간은 침묵으로 그 말을 듣습니다.

침묵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득 찬 가능성입니다.”


라빈이 물었다.

“그럼 침묵은 응답이 될 수 있나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깊은 기도는 말이 없죠.

침묵은 인간이 아직 감당하지 못한 말의 형태입니다.

탈무드 아봇의 잠언 3장 17절에는

'내가 많은 침묵을 배웠고, 침묵은 지혜를 위해

울타리가 된다'라고 적혀있죠.”


비트겐슈타인이 마지못해 말하듯 조용히 말했다.

“침묵은 철학의 마지막 장소입니다.

침묵이란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 것' 만이 아닌

언어로는 드러낼 수 없는 것이

스스로 드러난다고 봐야 하는 거죠.”


손택은 눈으로는 책을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그리고 예술의 첫 번째 문장이기도 하죠. 예술에서

침묵에 개념은 본질적으로 변할 수 없는 상황

내에서 가능한 여러 대안들을 논하는 것이니..."


진우는 노트에 적었다.

‘침묵은 결핍이 아니라,

언어가 미처 닿지 못한 감각의 자리다.

우리는 그곳에서 말보다 깊이 연결된다.’


카페 안엔 여전히 침묵이 머물고 있었고,

그 침묵이 오늘 하루 중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