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장 - 나는 나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카페 디알로고스의 오늘 메뉴판 맨 아래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당신은 정말 당신입니까?”
진우는 그걸 쓴 뒤에도
여전히 대답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오늘 손님들을 더 조용히 기다렸다.
첫 번째 손님은 르네 데카르트.
검은 외투, 침착한 말투, 한 손엔 깃펜을 들고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의심조차 할 수 없는 유일한 확실성은
바로 나 자신이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라빈이 물었다.
“하지만 생각은 멈출 수도 있잖아요.
그럼 나는 사라지나요?”
데카르트는 미소 지었다.
“아니요.
의식은 흐름이고,
자기 인식은 그 흐름을 알아차리는 능력입니다.
그것이 ‘나’라는 토대를 세우는 거죠.”
곧이어 다니엘 데넷이 들어섰다.
무심한 셔츠와 안경 너머로는
마치 컴퓨터처럼 깔끔한 눈빛이 빛났다.
평소보다 긴 수염을 다듬은 단정한 모습이었다.
“‘나’는 뇌가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해석하고,
그걸 기반으로 ‘하나의 나’라는 서사를 엮어낸 거죠.
나는 실체가 아니라,
서사의 환상입니다.”
진우가 물었다.
“그럼 나라는 건 그냥 이야기 구조일 뿐인가요?”
데넷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매 순간 갱신되는 버전이며,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삭제됩니다.”
그때 마지막 손님, 시몬 베유가 들어왔다.
단정한 셔츠와 어울리는 슬픔이 머문 듯한 표정.
그녀는 조용히 앉으며 말했다.
“나는 나를 타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고통받는 타인의 얼굴을 마주할 때,
나의 윤리와 책임이 드러나고,
그때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라빈이 정말 궁금한 듯 물었다.
“자기 인식이 윤리라고요?”
베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만 들여다보는 것은
때로 왜곡일 수 있어요.
타자의 상처에 반응하는 내 마음에서
나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비로소 자각하게 됩니다.”
데카르트가 베유를 직시하며 말했다.
“나는 안을 보라 했고...
그대는 밖을 보라 말하는군요.”
데넷이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그걸 전체적으로 편집하고 있는 셈이죠.”
진우는 노트에 적었다.
‘나는 나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생각? 기억? 경험? 이야기?...
타인의 눈동자 속에 떠도는 나를
조금씩 줍고, 연결하고, 물어보며,
‘아마도 이게 나일지도’라고
조심스럽게 짐작해 보는 것일까?’
카페 거울에 비친 진우 자신의 모습은
옷부터 표정까지 어제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하지만 진우는 금방 깨달았다.
그 역시 '나'였다.
타인의 눈동자에 비친 모습도,
나 스스로 자각하는 나의 모습도,
스마트폰에 저장된 모습도,
세수하며 바라보는 거울 속의 모습도,
말하고 행동하고 늙어가고
변화하고 달라지는
모든 것들이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