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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장 - 어른이 된다는 것

제44장 - 어른이 된다는 것

by 리얼흐름

진우는 커피 머신을 만지다가

뜨거운 물에 살짝 손을 데었다.

'예전 같으면 아프다고 방방 뛰었을 텐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듯하는 모습...

일상 중의 하나라고 자연스럽게 느끼는 모습...

이런 게 어른이 되었다는 걸까?'


첫 번째 손님은 장 자크 루소.

자연색 외투, 산책에서 막 돌아온 듯한 얼굴.

“인간은 태어날 때 선하고 자유롭지만,

사회는 그를 타락시키고

규율 속에 길들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종종

그 타락에 순응하는 일이죠.”


라빈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어른이 된다는 건 나빠지는 건가요?”


루소는 미소 지었다.

“아니요.

그저 순수함이 현실 감각과 타협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다만 타협이 너무 익숙해지면,

스스로를 잊게 되죠.”


곧이어 에릭 에릭슨이 들어섰다.

신중한 눈빛, 한 손에는 성장 도표가 그려진 노트.

“어른이 된다는 건, 정체성이 확립되고

그 정체성을 타인과 연결하는 능력이 생기는 시점입니다.

즉 책임지고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죠.”


진우가 물었다.

“그럼 책임이 곧 어른 됨인가요?”


에릭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청소년은 ‘나는 누구인가’에 머물지만,

어른은 ‘나는 누구를 돌보는가’로

넘어가야 하니까요.”


그때 마지막 손님, 레이첼 커스크가 들어왔다.


카페디44루소레이첼커스크에리크에릭슨.png


검은 셔츠, 투명한 어조,

그러나 문장 사이마다 슬픔이 미세하게 남아 있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더 이상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누군가의 엄마, 아내, 직장인, 그리고

때론 그 어떤 것도 아닌 채로 존재해야 하죠.”


라빈이 물었다.

“그럼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진정한 내 모습이 사라지는 건가요?

당신의 책 '모성이 되는 삶'에서의

어른은 어떠한 모습이었나요?”


커스크는 천천히 말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당신의 자존감을

잠식하고, 어른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당신의 지위를 침식시킨다.'라고 했죠.

즉, 어른됨은 드러남이 아니라,

배경이 되는 훈련입니다.

주인공이 아니라 무대가 되어주는 일.

빛이 아니라

빛을 반사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철학과 현실이 달랐던 루소는

과거를 조용히 회상하는 듯 중얼거렸다.

“그건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말이군요.

저는 저의 가정사 및 과거를 항상 후회하지만

이러한 후회를 한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인지할 수 있다는 것에서 어른이 되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한 루소의 과거를 잘 알고 있다는 듯

에릭슨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어른됨은 완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태도’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그 시기에 맞는

발달단계가 있을 뿐이죠.

인간은 누구나 그 시기에 맞는

심리사회적 과제를 수행하게 되니...

핵심은 '내가 누구인지를 잃지

않으면서 타인과 함께할 수 있는 사람,

더 나아가 다음 세대를 돌보는 사람'만이

어른이라 할 수 있죠.”


진우는 노트에 적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책임질 수 있는 고요함을 가지는 일이다.

남을 이해하려는 의지와,

나를 조금 내려놓는 연습.

그리고 여전히 질문을 멈추지 않는 자세...

올바른 어른의 모습에 관한

정답이 없음을 아는 것,

그러나 자신만의 확고한 정답을 향해 가는 것,

그러기에 평생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어른의 모습이지 않을까...’


창밖엔 새끼고양이들이 엄마를 따라가고 있었다.

진우는 그 새끼고양이들을 향해 조용히 속삭였다.

“그래서 나도 여전히 질문하고 배우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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