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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장 - 삶은 계획하는 것인가, 받아들이는 것인가

제45장 - 삶은 계획하는 것인가, 받아들이는 것인가

by 리얼흐름

오늘 카페 디알로고스의 메뉴판에는

‘오늘의 추천’이 없었다.

진우는 칠판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계획 없음. 우연대로 제공됩니다.”


라빈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드디어 철학 카페가 진짜 철학적이 됐네요.”


진우는 미소로 답하며,

"우리는 철학을 한 적이 없어,

그냥 대화를 한 것이지..."


첫 번째 손님은 세네카.

짙은 로브, 침착한 눈빛, 무심한 듯 단단한 말투.

“삶은 우리 뜻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태도만큼은 선택할 수 있죠.

계획이 무너질 때,

품격 있게 무너지는 것.

그것이 스토아 철학입니다.”


라빈이 물었다.

“그럼 계획은 무의미한 건가요?”


세네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계획은 살아가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계획이 집착으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삶이 아닌 통제를 사랑하게 되죠.”


곧이어 나심 탈레브가 들어섰다.

검정 셔츠, 예리한 말투, 노트 없이

손만 흔들며 말했다.


“삶은 예측 불가능합니다.

‘블랙스완’은 반드시 오고,

우리는 ‘회복력’이 아니라

‘반脆성(antifragility)’을 가져야 합니다.”


진우가 물었다.

“계획을 세우는 게 오히려

취약함일 수도 있단 말인가요?”


탈레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계획은 위험을 피하려는 시도지만

진짜 현명함은 '블랙스완'조차도 변수로 인정하고,

그러한 변수를 활용하고 극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거죠.

잊지 마세요.

계획은 세우되 그것에 속박되지 말 것을...”


그때 마지막 손님, 메리 올리버가 들어왔다.


카페디45세네카탈레브메리올리버.png


회색과 흰색이 어울리는 백발,

바람이 스민 듯한 표정.

그녀는 조용히 앉아 작은 시구처럼 말했다.

“나는 아침마다 어떤 계획도 없이 숲을 걷습니다.

그러다 새를 만나기도 하고 꽃을 보기도 하며

그 안에서 시가 태어나기도 하죠.

삶이란 그렇게 다가와야 아름다워집니다.”


라빈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조용히 물었다.

“그럼 아무 계획 없이 살아도 괜찮을까요?”


올리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계획이란 ‘틀’이 아니라 ‘여백’이어야 해요.

삶은 우리가 만든 프레임을 언제나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대신 관찰하고 기다리고 사랑하세요.

우리의 프레임은 생각보다 넓으니까...

그게 받아들이는 삶입니다.”


세네카는 울림 있는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받아들이는 것은 단념이 아니라,

선택의 다른 방식이 할 수 있죠...”


탈레브는 짧고 뻣뻣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방식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위험 관리입니다.”


진우는 노트에 적었다.

‘삶은 계획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일 계획하며 산다.

계획은 방향이고 받아들이는 것은 계획을 딛는 첫걸음이다.

그 둘이 만날 때 비로소 삶은 비로소 하나가 된다.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는 인생이란 얼마나 재미없는 일일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살아가는 인생이

인간답게 사는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그날 카페엔 ‘계획 없음’이라는 메뉴가 가장 잘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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