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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장 - 상처는 극복해야 하는가, 품어야 하는가

제47장 - 상처는 극복해야 하는가, 품어야 하는가

by 리얼흐름

오늘 카페 디알로고스엔

청소를 하다가 실수로 부딪혀

아주 살짝 금이 간 화분이 있었다.

진우는 그걸 버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무생물은 상처가 나도

고통스럽지는 않겠지 고치면 되니까...

하지만 인간의 상처는?

어쩌면 인간의 상처도

이런 식으로 흔적이라도

남아 있는 게 좋을지도 몰라.'


빗속에 습기가 찬 공기를 무겁게 밀며 들어온

첫 번째 손님은 프리드리히 니체.

검은 외투에 어울리는 강렬한 눈빛,

그는 조용히 말했다.

“상처는 넘어서야 합니다.

그 고통을 통해 인간은 더 높아지며,

우리를 부수지 못한 고통은

우리를 강하게 만듭니다.”


라빈이 물었다.

“그럼 상처를 기억하는 건 약함인가요?”


니체는 단호히 말했다.

“아니오. 기억하되, 붙잡히지 마십시오.

상처는 극복을 위한 무대이지,

거주지가 아닙니다.”


곧이어 들어온 손님은 브레네 브라운.

따뜻한 셔츠와 열린 몸짓 그러나 눈동자만큼은 깊었다.

“나는 상처를 덮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처를 드러낼 때 진짜 용기가 시작됩니다.

취약성을 품는 게 우리를 인간답게 하니까요.”


진우가 물었다.

“그럼 상처를 치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브라운은 조용히 말했다.

“먼저... 인정하는 겁니다.

‘그 일은 나에게 아팠다’고요.

그다음은,

그 아픔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겁니다.”


브라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야 안젤루가 들어왔다.


카페디47니체브레네브라운마야안젤루.png


검은 스카프와 인자한 외모

그리고 시처럼 흘러가는 말투.

“나는 상처를 외운 적 없습니다.

하지만 그 흔적을 부정하지도 않았죠.

상처는 내 시의 일부였고,

그 덕분에 나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더 잘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빈이 물었다.

“그럼 상처는 힘이 될 수도 있나요?”


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는 당신을 설명하진 않지만,

당신을 완성시킬 수 있어요.

극복이 아니라 동행의 대상일 때

우리는 비로소 더 깊은 사람이 됩니다.”


니체가 불만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그래도 나는 넘어서야 한다고 믿습니다.”


브라운은 니체를 달래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린 각자 다른 방식으로 치유되는 거니까요.”


따뜻한 느낌의 두 여인과 차가운 느낌의

한 남성의 대화가 카페의 온도를

적절하게 만들어 주는 것만 같았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듣기 위해

카페 커튼을 올렸다.

창문은 비로 인해 상처도 받고

동시에 씻김도 받는 것 같았다.


진우는 카운터로 돌아와

손에 묻은 물기를 가볍게

티슈로 닦고 노트를 펼치고 펜을 들었다.

‘상처는 기억이자 흔적이다.

때론 불씨처럼 나를 태우지만,

어떤 날엔 조명처럼 나를 비춘다.

그것을 없애기보다 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어쩌면 더 큰 용기다.’


그날 금이 간 화분 위에는

조용히 꽃 한 송이가 자라고 있었다.

위태하지만 오히려 금이 간 화분 위의 모습이

그 꽃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상처 위에 핀 작은 생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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