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장 - 외로움은 극복해야 할 감정인가, 인간다움의 일부인가
가을이라고 말해도 맞고
겨울이라고 말해도 맞을 정도로
애매한 날씨를 말하듯 카페문밖의 낙엽들이
유난히 건조하게 나뒹굴었다.
뭉쳐있지만 서로 함께가 아닌 듯
서로를 낯설어하는 느낌을
마른 사각사각소리로 표현하는 듯했다.
카페 디알로고스의 오늘 조명은 아주 낮았다.
라빈은 조명에 어울리는 잔잔한 첼로 음악을 틀었다.
테이블 간격도 평소보다는 서로 떨어져 있는 듯
느껴졌다.
그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는 편안해지고
누군가는 더 깊은 외로움에 잠겼다.
평소와는 달리 단정하게 머리를 모두
뒤로 넘기고 온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들어왔다.
검은 옷을 입은 모습이 건조하고 외로워 보였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은
타인과의 단절 때문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스스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옵니다.”
라빈이 주문을 받으며 말했다.
“그럼 외로움은 피할 수 없는 건가요?”
쇼펜하우어는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받아들여야 합니다.
모든 깊은 사유, 예술, 철학은
외로움에서 시작되니까요.”
곧이어 들어온 손님은 폴 틸리히.
짙은 회색 코트와 어울리는 깊은 눈동자가
그를 더욱 지적이고 온화한 모습으로 보이게 했다.
“외로움과 고독은 다릅니다.
외로움은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공허함이고,
고독은 존재의 깊이로 침잠하는 능동적 감정입니다.
중요한 건 그 감정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입니다.”
진우가 물었다.
“그럼 외로움도 긍정할 수 있다는 건가요?”
틸리히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로움은 때로는 ‘존재의 용기’를 키우는 공간입니다.
내가 나에게 말 걸 수 있는 순간,
외로움은 더 이상 결핍이 아니게 됩니다.”
그때 검은 콧수염의 나쓰메 소세키가 들어왔다.
눈빛보다 언어로 말하는 사람...
그는 소리보다 조용히 앉은 후 한 문장을 꺼냈다.
“사람은 사람 속에서도 외롭고,
혼자 있을 때보다 더 외로울 수도 있습니다.”
라빈이 속삭였다.
“그 말... 어느 순간부터는
너무 잘 알 것 같아요.”
소세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외로움은 감정이라기보다
세계와의 관계가 어긋났다는 신호입니다.
그러나 그 어긋남은
나를 나로 회복시키는 단서이기도 하죠.”
쇼펜하우어가 소세키를 비웃듯
단호하고 건조하게 말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혼자입니다.”
틸리히는 그런 쇼펜하우어를 그윽하게
달래듯이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러나 그 혼자됨을 감내할 때,
우리는 진짜로 누군가와 만날 준비가 되죠.”
진우는 펜을 꺼냈다.
사각사각 펜의 소리가 비어있는 노트를 채워
무언가 외롭지 않게 만들려 하는 것 같았다.
‘외로움은 도피할 대상이 아니라,
내가 나를 껴안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일지도 모른다.
그 공간을 견딜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과의 더 깊은 연결을 시작할 수 있다.’
카페의 음악은 잠시 멈췄고,
그 침묵 속에서 모두가 같은 외로움을
각자의 방식으로 품었다.
비어있던 노트에도 건조하게 뭉쳐있는 낙엽들에도,
이른 초겨울 새벽에 짖어대는 개소리에도,
심지어는 불어오는 공기에도,
외로움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현재 내 안의 내 마음을 진정으로 비춰주는
또 다른 깊은 곳의 내 마음, 내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