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장 - 변화란 무엇인가
카페 디알로고스의 오늘 조명은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했다.
진우는 무심코 커튼의 주름을 반대로 접었다.
라빈은 그걸 보고 웃었다.
“이런 게 변화 아니겠어요?”
첫 번째 손님은 헤라클레이토스.
짙은색 망토를 입고 물가를 걷는 듯한 걸음.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낮고 단호하게 말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모든 것은 흐르고 정지는 없다.
존재란 곧 변화다.”
라빈이 조용히 물었다.
“당신은 '언제나 만물이 흐른다'라는 말로 대표
되는 사람이잖아요. 그럼 우리는
무엇도 붙잡을 수 없는 건가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무엇을 붙잡기만 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현실에서 멀어진다.”
곧이어 질 들뢰즈가 들어섰다.
조금 흐트러진 셔츠와 복잡하지만 단정한 말투.
“변화는 단지 ‘다른 상태’로의 이동이 아닙니다.
그건 정체성의 해체, 그리고 반복 속에서
드러나는 차이의 리듬이에요.”
진우가 물었다.
“당신의 책 '차이와 반복'에서 말한
되기(becoming)란 그런 의미인가요?”
들뢰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통철학은 차이를 동일성 속에서
설명하려 했지만 나는 달라요.
우리는 단 한 번도 ‘완전히 같다’는 상태로
존재하지 않아요.
‘나’도 매일 다르게 구성되고,
그 안에서 변화는 정체성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죠.”
그때 마지막 손님인 로버트 퀸이 들어왔다.
깔끔한 슈트와 안경 그리고 손에는 오래된 조직도 한 장.
그는 조용히 앉아 말했다.
“진짜 변화는 위기 속에서만 일어납니다.
혼란 없이 성장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건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는
자기 초월의 순간입니다.”
라빈이 물었다.
“그럼 고통은 변화의 필수 조건인가요?”
로버트 퀸은 단호히 말했다.
“거의 그렇습니다.
불편함이 없으면 변화는 실현되지 않아요.
진짜 변화는 구조가 아니라 인식의 전환입니다.
내가 말하는 변화의 핵심 단계는
현재 상태에서 위기와 불편함을 느끼고
불확실성 속으로 뛰어들어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꿈꾸는 듯한 눈으로 말했다.
“강을 두려워하지 말고 함께 흘러야 한다.
존재 자체는 끊임없이 흐르고 움직이며
대립하는 것들의 긴장 속에서 질서를
이루기 때문이지...”
들뢰즈는 커피를 내려놓고 무언가를
더 설명하 듯 손을 과하게 움직이며 말했다.
“되기란 결국 단순하게 A가 B로 변한다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나면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흐름이에요.
결국 되기는
스스로를 해체하는 용기이죠.”
진우는 노트에 적었다.
‘고인 물은 언제나 썩기 마련이다.
오늘 온 인물들은 항상 고여있지 말고
변화해야 한다고 다른 방법으로 말했다.
변화는 방향이 아니라 움직임이다.
그리고 그 움직임 속에서 나는 내가 아니게 되고,
그러면서 더 나 다뤄진다.’
그날 커튼의 주름은 여느 날보다 조금 더 자연스러웠다.
달라지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달라졌다.
변화는 아마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의식하지 못한 손끝에서,
의식하지 못한 마음에서,
의식하지 못한 의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