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에 대한 묵상 26

​- 무정부주의(아나키즘) - 1

by 전영칠

'근원에 대한 묵상'시리즈는 묵상하고 살면서 문득 스치는 느낌(생각)들을 쓴 것입니다.




근원에 대한 묵상 26

58. 무정부주의(아나키즘) -1


- 무정부주의에는 미래 국가와 사회에 대한 힌트와 영감이 들어 있고, 일종의 이상주의적 인자도 들어 있다. 그것은 근원적 정신과도 일부 통한다.

세계의 무정부주의와 한국의 무정부주의, 그리고 그들의 사상과 활동을 알아보고 미래의 무정부주의는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할 것인가를 예단해 보기로 한다.



1. 무정부주의


무정부주의(Anarchism)는 단순히 '정부가 없는 상태'를 넘어, 모든 강제적인 권위와 계급적 구조(국가, 자본, 종교 등)를 거부하고 개인의 자유와 자발적인 협력을 중시하는 정치 철학이다.


무정부주의적 사상은 고대 그리스의 키니코스학파나 도교 사상에서도 발견되지만, 이를 현대적인 정치 이론으로 정립하고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자처한 최초의 인물은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이다.

주요 주장: 1840년 저서 《소유란 무엇인가?》에서 "소유는 도둑질이다"라는 파격적인 문장을 남겼다. 그는 국가가 소수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다수를 억압한다고 보았으며, 강제적인 정부 대신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상호 부조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프루동 이후 무정부주의는 여러 갈래로 발전하며 마르크스주의와 대립하거나 협력하며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러시아의 바쿠닌은 무정부주의를 행동주의적 혁명론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조차 또 다른 형태의 권위주의적 국가가 될 것이라고 비판하며 마르크스와 치열하게 대립했다. 결국 이 갈등으로 인해 국제노동자협회(제1인터내셔널)는 분열되었다.


크로포트킨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생존 경쟁보다 '상호 부조'가 종의 번식과 발전에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무정부주의 공산주의의 기틀을 닦았다.


무정부주의자들은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전 세계 혁명의 현장에서 가장 급진적인 목소리를 냈으나, 그 대가는 매우 혹독했다.

헤이마켓 사건 (1886): 미국 시카고에서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시위하던 무정부주의자들이 폭탄 투척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사형당했다. 이는 '노동절(May Day)'의 기원이 되었다.

스페인 내전 (1936~1939): 무정부주의가 가장 구체적으로 실현되었던 시기다. 카탈루냐 지역에서는 무정부주의 노동조합(CNT)이 공장과 농장을 공동체 형태로 운영하며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듯했다. 그러나 프랑코의 파시즘 세력과 스탈린주의자(소련의 지원을 받는 공산주의자) 양쪽으로부터 공격받으며 처참하게 무너졌다.

한국의 아나키즘: 일제강점기 시절, 신채호, 이회영 등 많은 독립운동가가 아나키즘을 수용했다. 이들은 단순한 독립을 넘어 권력 없는 자유로운 사회를 꿈꿨으며, 의열단 활동 등을 통해 치열하게 투쟁하다 고문과 투옥으로 희생되었다.


무정부주의가 주류 정치에서 밀려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조직력의 부재이다. 중앙 집중화된 권력을 거부하다 보니, 강력한 군사력과 조직력을 갖춘 국가 권력이나 중앙 집권적 공산주의 세력과의 물리적 충돌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는 공공의 적 프레임이다. 19세기말 일부 아나키스트들이 선택한 '행동에 의한 선전(암살, 폭파 등)'은 대중에게 아나키즘을 '혼란과 테러'로 인식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다.



2. 한국의 아나키스트 신채호의 사상


단재 신채호(1880~1936)는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지식인이자 실천적 혁명가이다. 그는 초기 민족주의자에서 점차 민중의 직접 혁명을 주장하는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로 진화했다.

그의 아나키즘적 활동과 사상을 핵심적인 세 가지 축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신채호 역사 철학의 정수는 그의 저서 《조선상고사》 서문에 등장하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다.

역사는 '나(우리 민족, 민중)'와 '내가 아닌 것(억압자, 침략자)'이 싸우며 발전하는 과정이다.

초기에는 '아'를 민족 단위로 보았으나, 아나키즘을 받아들인 후에는 '억압받는 민중 전체'로 그 범위를 확장했다. 즉, 국가라는 권력 기구가 민중을 억압한다면 그 국가 또한 '비아'가 되어 투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의열단 단장 김원봉의 요청으로 1923년 작성된 《조선혁명선언》은 한국 아나키즘의 성서와 같다. 여기서 신채호는 기존 독립운동의 한계를 통렬히 비판했다.


외교론(강대국에 구걸)이나 준비론(실력 양성)을 '망국적 환상'이라 일축했다. 오직 깨어있는 민중의 직접적인 폭력 투쟁(민중 직접 혁명론)만이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파괴의 목적은 건설에 있다"라고 선언하며, 단순히 일본을 몰아내는 것을 넘어 모든 지배와 피지배의 계급 구조를 파괴한 뒤에야 진정한 민중의 나라를 세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신채호는 이론에만 머물지 않고 국경을 넘나드는 연대 활동에 투신했다.

1927년 중국 신창에서 아시아 각국의 아나키스트들과 함께 '동방무정부주의자 연맹'을 결성했다. 그는 여기서 조선 독립이 곧 동양 평화와 인류 해방의 시작임을 강조했다.

1928년 무정부주의 활동 자금을 마련하려다 대만에서 일제에 체포되었다. 10년형을 선고받고 여순 감옥에 수감되었으나, "왜놈의 땅을 밟지 않겠다"며 세수할 때조차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는 일화는 그의 강직한 성품을 보여준다.

1936년 차디찬 감옥에서 뇌출혈로 순국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국가권력에 의한 모든 억압을 거부하며 아나키스트로서의 지조를 지켰다.


그의 아나키즘은 단순히 '정부가 없는 상태'를 추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민중이 스스로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사회'를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는 어떤 형태의 권력이든 그것이 민중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저항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엘리트 중심의 정치가 아닌, 기층 민중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야 함을 강조했다.


신채호의 사상적 궤적을 추적해 보면, 그는 생애 후반기에 명확히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Anarcho-Communism)'의 길을 걸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지향한 '공산주의'는 우리가 흔히 아는 마르크스-레닌주의(국가 중심의 공산주의)와는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그가 왜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자로 불리는지, 그 독특한 사상적 지형을 분석한다.


신채호는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사상에 깊이 매료되었다.

크로포트킨은 국가라는 강제적인 권력 기구 없이, 인간 본연의 선의와 '상호부조)'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적 생산과 소비를 주장했다. 신채호는 이 이론에서 조선 민중이 일제의 압제뿐만 아니라 모든 지배 구조에서 벗어날 길을 보았다.

사유 재산을 부정하고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나누는' 공산주의적 경제 원리를 아나키즘의 틀 안에서 받아들였다.


신채호가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자인 이유는 그가 '권력의 집중'을 극도로 경계했기 때문이다.

당시 볼셰비키 혁명 이후 득세하던 마르크스-레닌주의는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강력한 국가 기구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신채호는 "국가라는 이름의 권력은 그 주체가 누구든 결국 민중을 억압하게 된다"라고 믿었다. 그에게 권력은 교체 대상이 아니라 해체 대상이었다. 따라서 그는 국가를 유지하려는 공산주의자들과는 날카롭게 대립했다.


그의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는 한국 특유의 상황인 '식민지 해방'과 결합되어 더욱 강렬해졌다.

<조선혁명선언>에서 그는 민중을 단순한 수혜자가 아닌 혁명의 주체로 세웠다.

그가 꿈꾼 공산주의 사회는 중앙 정부가 배급을 결정하는 사회가 아니라, 마을 단위의 민중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며 서로 돕는 '자유 합의 체제'였다.


신채호의 사상을 요약한다.

신채호는 "국가라는 감옥이 없는 평등한 공동체"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자가 맞다. 다만, 그의 사상은 서구의 이론을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현실 속에서 '민족 해방'과 '인류 평등'을 동시에 달성하려 했던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었다.


그의 아나키즘은 오늘날 국가의 비대화와 개인의 소외 문제를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도 "진정한 자유와 평등은 권력으로부터 오는가, 민중의 연대로부터 오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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