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yo [ODDS&ENDS]
창작이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문학, 예술, 음악 등 다양한 문화의 전반을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천재라 불리는 이들은 창작을 통해 혼자의 힘으로 재능을 꽃피우는 이들이 많다. 이것은 천재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창작 활동을 위해 다른 인물이나 분야에 도움을 받기도 한다.
내가 오늘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음악을 창작하는 일에 관한 것이다. 문학은 다른 작가에게서, 그림은 화가에게서 영감을 얻어내듯이 목소리만으로도 음악에 대한 영감을 주는 이가 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닌, 기계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에게는 듣기 거북할지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형편없는 목소리로 들릴지라도 듣는 사람에게 힘이 되는 목소리가 있다. 이 기계들의 목소리가 나에게는 그렇다. 오늘은 목소리를 빌려주는 이들, 음성 합성 엔진의 노래를 소개하려고 한다.
음성 합성 엔진이란 말 그대로 음성을 합성해서 노래를 부르게 하는 악기의 일종이다. 성우의 목소리를 한 자 한 자 녹음해서 다듬고 기계음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하츠네 미쿠, 카후, 카사네 테토가 있다. 보컬로이드(보컬+안드로이드)가 가장 일반적이고 체비오, 신디사이저v, NT같은 다양한 엔진이 존재하며 지금도 한국, 일본을 비롯한 수 많은 곳에서 새로운 음성 합성 엔진이 개발되고 있다.
'음성 합성 엔진이 뭐지? 난 처음 듣는데?' '또 지만 아는거 이야기 하네'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은 모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문화를 무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에서는 인디음악을 넘어서 음악 문화 전반을 아우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세다. 당장 유튜브만 봐도 몇천, 1억 뷰가 넘는 곡이 한 두개가 아니다. 한국도 시유, 유니를 비롯한 음성 합성 엔진의 음악(ex:숨바꼭질, 장산범, 벛꽃비)들이 인디 음악씬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크든 작든 이 기계라 불리는 이들이 목소리를 빌려주며 음악계에 기여를 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면 파국이 일어날 수 있다. 좋은 곡을 만들어도 불러줄 사람이 없어 묻혀버릴 수도 있다. 이런 이들을 구원한 것이 바로 음성 합성 엔진인 것이다. 기계가 목소리를 빌려주면 작곡가들이 목소리에 의지를 담는다. 엔진과 작곡가는 이 과정을 통해 이름을 알린다. 수 많은 작곡가들이 엔진들을 거쳐갔고 사람들은 이들의 곡을 사랑했다. 곡과 곡의 캐릭터, 엔진을 모두가 좋아했다.
하지만 음성 합성 엔진은 목소리를 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뿐. 인디 음악계에서 메이저로 올라갈 발판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엔진을 쓰는 이들은 사람 보컬을 대체하기 위해 쓰는 것이 이유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음성 합성 엔진이 너무 유명해서 그 그림자에 자신의 곡의 색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 소개할 곡의 작곡가인 'ryo'도 그럼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멜트],[월드 이즈 마인] 등, 일본 인디 음악계, 음성 합성 엔진씬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작곡가. 메이저로 떠나버리면서 전신인 음성 합성 엔진을 떠나보낸 작곡가. 그리고 음성 합성 엔진들과 그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곡을 남긴 작곡가. 오늘 소개할 곡인 [ODDS&ENDS]는 그가 이 씬에 남긴 마지막 발자취이자 헌사이다.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내가 음성 합성 엔진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를 짚고 넘어간다. 내가 처음 음성 합성 엔진의 노래를 접한 것은 그 곡의 커버를 통해서였다. 설○임이라는 팀이 커버한 곡(화가를 소재로한 곡이었다.)이었는데, 그 곡이 어찌나 듣기 좋게 들리던지! 나는 호기롭게 커버곡의 원곡을 찾아들었다. 하지만 얼마 안가서 바로 원곡을 튼 손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 곡의 기계음이 그것을 처음 접한 나에게는 듣기 거북했기 때문이다. 기계음 특유의 딱딱함과 불협화음은 나에게는 소음공해로 들렸었다. 그래서 노래 듣기를 그만둔 뒤 앞으로 기계음으로 된 노래는 찾아듣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내가 이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아마 한 공연 영상을 본 이후였을 것이다. 알고리즘의 흐름에 따라 영상을 탐방하던 나에게 한 영상이 눈에 보이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것은 음성 합성 엔진 콘서트의 마지막 곡에 대한 영상이었고, 그 곡이[ODDS&ENDS]였다. 영상 속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내가 처음 들었던 기계의 목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인트로의 피아노 선율, 밴드 세션, 눈을 즐겁게 하는 3D 모델과 가사에 맞춘 연출(특히 지금까지 음성 합성 엔진과 함께한 창작물들을 날개로 만든 것과 마지막 연출이 최고였다. 꼭 한번 봐라. 내 부족한 글 솜씨로는 다 설명할 수 없으므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한 자 한 자 가사를 내뱉는 여러 엔진들, 그리고 화룡점정은 하츠네 미쿠의 파트였다.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 숨을 내쉬는 소리,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그 목소리가 나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그 전까지는 음성 합성 엔진의 노래는 듣지도 않고 거르는 부류였다. 사람이 부른 목소리만이 감정을 담아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고 무기질 같은 그 목소리는 나에게 아무 감흥도 줄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무대 영상은 달랐다. [ODDS&ENDS]는 나에게 기계였기에, 기계만이 줄 수 있는 메세지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음성 합성 엔진은 이 노래를 계기로 나의 인생에 바짝 다가왔다.
'감동 받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듣기 싫은 불협화음이라고 생각했던 기계음으로 아름다운 메세지를 전할 수 있다니. 나는 곧바로 이 노래에 대하여 찾아보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는 이 노래가 기계가 인간에게 전하는 말, 기계와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말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ODDS&ENDS]는 작곡가인 ryo와 노래를 부른 하츠네 미쿠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츠네 미쿠를 사용한 많은 곡들이 히트하면서 명성을 올리던 그는 다른 보컬과 함께 메이저로 진출하며 승승장구 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미쿠는 더이상 목소리를 빌려주는 필수요소가 아닌 선택사항이 되어버렸고, 음성 합성 엔진을 사용한 곡의 빈도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비판도 많이 듣고, 보컬과의 결별로 공백기를 가지게된 그는 자신의 작곡가로서의 삶과 미쿠와의 관계를 노래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선보이게 된다. 그게 바로 [ODDS&ENDS]이다.
'슬픔과, 기쁨, 이 모든 것을 '한 명'과 '하나'는 알게 되었어'
불러줄 '목소리'가 없으면 좋은 가사도 의미를 만들 수 없게 된다. '목소리'에 의지를 불어넣지 못하면 어떤 의미도 만들 수 없다. 작곡가는 의지를 만들고 목소리는 그것을 받아 의미에 숨을 불어넣는다. 그들의 관계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관계. ryo는 그 관계에 대해 끈임없이 고민했고 지금까지 자신의 의미만을 위해 만든 곡이 아닌, 오로지 목소리에게 바치는, 음성 합성 엔진에게 바치는 헌사와 같은 곡을 쓴 것이다. '한 명'도 '하나'도 답을 깨닫고 각자의 길로 걸어간다는 것이다. [ODDS&ENDS]는 그런 곡이다.
무명에서 시작했던 수 많은 작곡가들.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목소리를 빌렸을까. 인기인이 되어 더이상 기계를 사용하지 않게 되더라도, 단지 인기를 얻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하더라도. 기계는 언제까지고 목소리를 빌려줄 것이고, 그들이 돌아올 자리를 마련해주겠지. 그리고 언젠가 그들이 고향으로 눈길을 준다면 그땐 또 보물 같은 의미가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세계 어디든 음성 합성 엔진에 발을 들인 모든 이들에게 말이다.
나는 이 문화를 사랑하며, 나의 음악 감상 인생에 대한 종착지라고 생각한다. 잡동사니, 불협화음, 형편없는 목소리일지라도 누군가의 감정을 전해줄 목소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취향은 탈 수도 있지만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당신의 자유다. 나에게는 '한 명'과 '하나'가 가진 의지와 의미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 목소리에 의지를 담아 노래를 만들고 부르겠지.
'잡동사니의 목소리는 그 누구도 아닌 너만을 위해 노래해'-[ODDS&EN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