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 무굴 회화, 그리고 천상의 정원
인도를 오래 여행하다 보면 한 가지 확실히 느껴지는 게 있다.
이 나라는 수천 년 동안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 충돌했고,
그 충돌 속에서 전혀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는 것.
그 중심에는 무굴 제국(Mughal Empire)이 있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무굴은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라
인도의 예술, 건축, 언어, 옷차림, 정원까지 바꾸어놓은
‘취향의 제국’이었다.
아그라(Agra)에 도착했을 때,
나는 타지마할 앞에 서서 한동안 말을 잃었다.
화려하다기보다는… 너무 정제되어 있었다.
오히려 그 완벽함이 낯설 만큼.
샤 자한 황제가 사랑하는 아내 뭄타즈 마할을 위해 지은 이 건축물은
‘사랑의 무덤’이라는 낭만적인 별명 뒤에
페르시아의 돔 건축, 인도의 대리석 조각, 중앙아시아의 기하학적 설계가 섬세하게 얽혀 있다.
하얀 대리석 위를 걷다 보면,
벽에 새겨진 쿠란 구절이 꽃무늬처럼 부드럽게 흐른다.
아름다움이 경건함과 얼마나 가까이 있을 수 있는지를,
타지마할은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무굴의 예술은 건축만이 아니다.
회화는 어쩌면 그들의 감성과 지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분야다.
무굴 회화는 페르시아에서 온 미니어처 양식에
인도의 풍경, 사람, 동물, 신화를 덧입혔다.
궁정 화가들은 왕의 사냥, 연회, 전투뿐 아니라
꽃 피는 정원에서 연꽃을 들고 선 연인의 모습까지 섬세하게 그려냈다.
특히 제국의 황제였던 아크바르나 자한기르가 후원한 화가들은
그림을 통해 ‘권력의 이야기’뿐 아니라
예술이 감각과 관찰의 기록이라는 것을 남겼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장면 속에 담긴 시선, 색의 흐름,
심지어 인물의 손끝까지도 정교하게 묘사돼 있다.
그림이 말을 한다면,
무굴 회화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철학이라고 느껴졌다.
무굴 제국이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은 정원(Garden)이다.
그들은 정원을 단순히 ‘조경’으로 보지 않았다.
이슬람적 천국관을 바탕으로 만든 ‘파라다이스 가든(Chahar Bagh)’이 그들의 이상이었다.
네 방향으로 흐르는 물길,
중앙에는 분수,
그리고 그 사이에 대칭적으로 심어진 과일나무와 꽃.
이 정원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신의 질서,
인간의 내면,
그리고 죽은 뒤에 도달할 이상향을 시각화한 공간이었다.
타지마할도 그 정원 속에 지어졌고,
델리의 훔마윤 묘(Humayun’s Tomb) 역시
‘죽음을 위한 정원’으로 설계됐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 소리 사이로
삶과 죽음을 대하는 무굴의 감수성이 느껴진다.
자연과 인간, 공간과 시간 사이에 균형을 놓으려 했던 사람들.
그들이 만든 정원은 지금도 여전히 조용한 시를 쓰고 있었다.
무굴 제국은 단지 외래 문화를 들여온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도라는 땅의 빛과 온도에 맞게 다시 짜 맞췄다.
그 흔적은 오늘날 인도의 언어에도, 옷에도, 음식에도 스며 있다.
‘비르야니’의 향신료 안에도,
‘우르두’라는 언어의 억양 안에도
무굴의 그림자와 빛이 동시에 담겨 있다.
그들이 남긴 건 단순한 양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 타협하고 섞이는 법이었다.
한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그 나라가 과거에 어떤 ‘취향의 선택’을 했는지가 보인다.
무굴 제국은, 인도라는 땅 위에
자기만의 ‘감각의 세계’를 심어놓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대리석 위에, 붓 끝에, 정원의 바람에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