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을 누가 어디서 읽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면
웹툰을 연재한 적이 있다. 그림은 아니고, 나는 스토리 작가였다.
어쩌다 시작된 일이었다. 꼭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뭔가 착착 굴러가더니 어느 날 계약서 앞에 앉아 있었다.
그 작품은 내 첫 연재작이었고, 당시에선 아직 인지도가 낮았던 신생 플랫폼에서 시작됐다.
장르는 현대 판타지. 무겁지 않고,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라이트한 결이었다.
독자 반응은… 뭐, 딱히 없었다. 댓글은 매번 0~5개.
인기가 없다고 슬프진 않았는데, 존재감이 없다 보니 글 쓰는 손도 점점 가벼워졌다.
문제는,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작가’가 되어버렸다는 거다.
첫 연재 시작 당시 만들어둔 분량은 고작 5화. 그 이후는 매주 회사 다니며 새로 써야 했다.
매일 ‘이번엔 못 쓰는 거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따라붙었고,
그 와중에 다른 작품들엔 수십 개씩 달리는 댓글을 보며 생각했다.
"아, 내가 그렇지 뭐."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내 작품을 검색했는데
2페이지쯤에 익숙한 이름이 떴다. “밤토끼”.
그 이름을 보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
‘이런 데도 내 작품이 올라갔나?’
그땐 내 작품이 여러 플랫폼에 팔려나가던 시기였다. 프랑스, 일본 플랫폼 계약도 체결됐고, 어디서 또 새로 런칭됐나 싶었다.
클릭해보니… 아니었다.
진짜 밤토끼였다. 그 유명한 불법 웹툰 사이트.
그리고 더 놀라운 건
거기엔 댓글이 쏟아지고 있었다.
순간 착각했다. “이건 내 작품 댓글이 아닌가 보다. 그냥 이 플랫폼 전체 댓글인가?”
하지만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익숙한 캐릭터 이름이 보이고, 내 설정을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었다.
플랫폼에서는 나를 읽는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밤토끼에선 누군가가 뭔가를 느끼고, 말하고, 싸우고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나빴다. 동시에.
문제는 그 뒤다.
나는 다른 작품들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 플랫폼에 같이 연재하던 다른 작가들.
그런데 어떤 작품은 없었다. 밤토끼에 없었다.
그 순간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어… 그럼 난 왜 있는 거지?”
인기작만 올리는 건가?
그림이 더 예뻐야 되는 건가?
혹시 나, 인정받은 건가?
그런데 그 인정이 ‘불법’이라는 말 위에 얹히니,
그 무게가 묘하게 기울었다.
결국 이 일은 소속사에 알렸고,
그쪽에서 조치를 취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대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시기엔 마침 '밤토끼'를 포함한 불법 유통 사이트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시작된 시점이었다.
"웹툰 불법 유통 사이트 ‘밤토끼’ 운영자 구속"이라는 기사 제목을 몇 달 후에야 보게 됐다.
그날 밤, 나는 밤토끼 댓글을 캡처해 두었다.
정식 플랫폼에서는 듣지 못했던 말들.
좋든 싫든, 내 글에 누군가가 반응해준 기록.
말하자면, 거기에서 아이러니하게 독자 인사이트를 얻었다.
그 뒤로 나는 댓글 분석에 밤토끼도 포함시켰다.
불법이지만… 진심이 담긴 피드백이 있었던 곳이기도 했으니까.
어쨌든 그날 나는
정식 플랫폼보다 불법 사이트에서 더 인기 있는 작가가 되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방식의 ‘성공’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게 바로 ‘불법적인 인정 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