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퇴사를 준비하며 출근하는가

고양이 호텔 엑셀을 열어본 어느 직장인의 생존 매뉴얼

by 잡생각 수집가

고양이 호텔 창업 수익 구조를 엑셀에 정리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처음엔 우스갯소리처럼 시작했지만, 어느새 진지해졌다. 보증금, 월세, 케이지 수, 수익률까지 계산하던 그날의 나는… 사실 이직을 고민하던 사람이 아니라, 실직을 상상하던 사람이었다.


처음 그 생각이 들었던 건, 길을 걷다 우연히 ‘고양이 호텔’ 간판을 봤을 때였다. 멍하니 그 간판을 바라보다가 문득, ‘나도 이런 거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즈음 내 마음엔 계속 이직과 퇴직에 대한 불안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회사의 ‘칼잡이’가 입사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가 지나온 모든 회사엔 구조조정이 있었고, 그 대상이 ‘경력 많은 나’일 거라는 착각— 아니, 직감이 들었다.


나도 회사 고인물 중 하나였다. 300명 가까이 되는 회사에서 입사 순으로 치면 30위 안쪽이었는데, 몇 개월 사이에 10위권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자연스레 오래된 동료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났고, 그들과 나눈 퇴직 전 대화 속엔 공통된 기류가 흘렀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다더라”는 이야기.


더 놀라웠던 건, 몇몇은 다음 회사를 구하지도 않고 퇴직을 결정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담담하게, 혹은 조금은 체념한 듯 내게 말했다.

“이젠 좀 쉬고 싶다”고.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 같은 사람을 들어갈 수 있는 포지션은 많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길게 보면 50살이 넘으면 대부분 회사에 다니기 힘들어진다는 것도.


“지금 짤리면, 나는 뭘 해야 하지?”


그 질문이 나를 창업 계산서로 이끌었다. 웃기지만, 진심이었다.

나는 고양이를 키운다. 그래서 자연스레 ‘누가 내 고객이 될까?’를 생각하게 됐다.

고양이를 많이 키우는 지역보다, 오히려 ‘고양이를 혼자 키우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가 더 좋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4인 가족이라면 누군가 집에 남을 수 있지만, 혼자 사는 사람은 여행이라도 가면 맡길 곳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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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곧 현실이 떠올랐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다. 강아지 호텔처럼 수요가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 마음을 스쳤다. 게다가 고양이는 2~3일 정도는 혼자서도 지낼 수 있는 동물이다. 사업이 성립할 만큼의 빈도가 나올까? 머릿속 계산이 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다른 회사에 최종 합격 했다. 하지만 불안은 따라온다. 수습기간은 3개월. 큰 회사라지만, 2년 전 구조조정 전적이 있다. “사람 사는 데니까, 쉽게 안 자르겠지?”라고 믿고 싶다가도, “혹시 내가 그 ‘예외’가 되진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또 하나. 지금 회사는 규모가 훨씬 크다. 나처럼 연차가 많은 시니어들도 넘쳐난다.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위 사람을 도와주고 아래 사람을 가르치는 위치였다면, 이제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경쟁 속에 놓일 수도 있다. 내 영향력을 넓히는 게 더 어려워졌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요즘 우리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동시에 회사 밖의 삶을 준비한다. 그건 배신도, 도망도 아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매뉴얼일 뿐이다.


어쩌면 나는, 아니 우리는 회사에 충성하면서도, 늘 탈출구를 찾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고양이 호텔이든, 크몽 이든, 작은 창업 아이디어든.

이젠 그게 취미도, 부캐도 아니다.

그냥, 혹시 모르니까 보험처럼 챙겨두는 것뿐이다.


가끔은 엑셀보다 불안이 더 정확한 예측 도구가 된다.

오늘도 고양이 호텔 셀을 한 칸 더 늘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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