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좋았는데, 오늘은 왜 부끄럽지?

창작자들이 밤마다 썼다 지우는 이야기들

by 잡생각 수집가

웹툰 시놉시스를 쓸 때면 늘 밤이 좋았다. 조용한 방 안, 흐릿한 조명, 약간 감성적인 음악까지 틀어두면 어디선가 천재성이 솟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단숨에 한 편의 시놉시스를 써내려갔다. 제목도 멋졌고, 주제도 괜찮았다. “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중독된 사람의 이야기. 가능성이 있다는 상태에 너무 오래 머무르며,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였다.


밤엔 정말로 그 감정이 내 것이었다. 이건 내 이야기였고, 동시에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써놓고 스스로 감동받았고, 마음 깊은 곳이 살짝 떨렸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그 파일을 다시 열었을 땐… 이상하게 민망했다.

너무 감상적인가?

이게 팔릴까?

이게 ‘누군가의 이야기’이긴 한 걸까?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국 그 시놉은 ‘최종_완성.txt’라는 이름을 가진 채 폴더 속에서 잠들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그런데 어느 날 다시 우연히 그 파일을 열었을 때, 또 이렇게 생각했다. “이거 왜 안 했지?” 그때의 감정이 다시 살아났다. 이야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냥 그날 아침의 나, 너무 이성적인 나, 혹은 ‘팔릴까?’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내가 그것을 멈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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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순간을 난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다.

감정적으로 몰입해 썼던 것들이 다음 날이면 촌스럽게 느껴지고, 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좋아 보인다. 이 감정의 사이클은 창작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요즘은 누구나 창작자가 아닌가. 브런치, 인스타, 유튜브, 틱톡… 다들 뭔가를 만들고 남기고 공유한다.

그러다 보니 ‘어제 쓴 글’을 ‘오늘의 나’가 부끄러워하는 경험도 많아진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감정이 틀린 걸까? 아니면 이성이 과한 걸까?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감정은 틀린 게 아니다. 다만,


그 감정에는 시차가 필요하다.


우리는 너무 빨리 스스로를 판단한다. 너무 빠르게 ‘이건 아니야’라고 말해버린다.

하지만 감정은 원래 그런 것이다. 그 순간엔 진심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그 진심을 어떻게 다룰지 몰라 불안해지는 것. 어쩌면 가장 창작자다운 태도는, 그 감정을 단번에 평가하지 않고 잠시 묵혀두는 것 아닐까.


버려진 시놉시스? 아니다. 그건 아직 덜 익은 이야기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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