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Y 그림그리기
“이거 좀 보세요.”
복지관에서 만난 낯선 이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 속에는 늘어진 가지에 탐스러운 사과 몇 알이 매달린 그림이 있었다. 채색의 어우러짐 위에 시선이 머물렀다. 놀라운 솜씨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그쪽도 그릴 수 있어요.”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내게 들려준 의외의 한 마디였다. 겸손이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밑그림에 번호가 적혀있어 그대로 색칠만 하면 된다며 물감과 붓도 세트로 온다는 것이었다. 호기심이 이끈 물음에 아들이 최근 사별한 자신에게 적적함을 달래 줄 거라며 선물로 보내준 것이라 구매 방법은 알지 못한다는 답만 반복했다. 그녀의 그림도 효심 가득한 아들의 마음도 부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즐기는 무언가를 설명하지 못하는 그녀가 답답했다.
학창 시절, 나는 선생님께 칭찬을 들을 정도로 스케치에는 늘 자신감이 충만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붓만 들면 나의 그림은 평범하다 못해 최악에 치달을 정도로 채색에는 재주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림에 대한 꿈을 접고 산 지 오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나보다. 그녀가 그렸다는 그림을 본 순간 내면에 동굴 속 파편으로 숨어 있던 욕망이 꿈틀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빨리 찾아보라고 나를 닦달했다.
검색의 늪에 빠졌다. ‘그림 그리기, 번호로 그린 그림, 그림 취미 활동’ 등 다양한 단어를 나열해도 나타나지 않았다. 물음표만 제공하고 떠난 그녀를 향한 원망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 휴대폰에서 보여준 그림이 생각났다. ‘사과 그리기’로 검색하자, 마침내 비밀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DIY 그림 그리기’였다. 찾아냈다는 기쁨과 그릴 수 있다는 설렘에 흥분되었다.
‘그 여름 자전거길’ 내가 선택한 그림이다. 그다지 비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왠지 나도 그녀처럼 아들에게 선물로 받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서울살이 중인 아들과 이렇게라도 한마디 더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두 달이나 남았건만 내 생일 선물로 사달라고 카카오톡으로 문자를 보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자지러지게 웃기를 반복하는 까만 고양이 이모티콘과 더불어 '주문했어.'라는 무덤덤한 한마디가 돌아왔다.
택배 상자를 여는 순간 밑그림이 그려진 캔버스와 스물세 종류의 물감과 네 개의 붓이 쏟아져 나왔다. 도대체 누가 깨알 같은 숫자들이 빽빽하게 박혀있는 이런 섬세한 밑그림을 그렸단 말인가. 시작도 하기 전에 보일 듯 말 듯한 촘촘한 숫자 앞에 주눅 들었지만, 지금의 나는 시간과 여유가 남달리 많은 사람이 아니든가. 포기란 없다. 그리기가 시작되었다. 더디고 더딘 속도지만 매일 조금씩 공간을 채워나갔다. 어느 순간 하늘과 어우러진 구름이 꿈틀거렸고, 하늘을 품은 개울물이 흘렀으며, 울창한 숲과 꽃을 품은 들판이 어우러진 길 위에 자전거 타고 가는 소녀의 뒷모습이 드러났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멋진 풍경화 한 점이 내 앞에 놓였다.
작은 그림 하나를 통해 인내를 배웠고, 뒤늦게 자연 속에 숨은 색을 찾아내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회색과 흰색이 곁들여진 뭉게구름 사이로 손대면 쏟아질 듯한 코발트색과 연푸른색이 어우러진 하늘이 있었다. 길가 늘어선 가로수에도 사방으로 뻗은 가지와 초록과 연초록이 뒤엉킨 잎사귀의 색상이 스며드는 햇살의 방향에 따라 달랐다. 왜 이제야 다양한 색들이 눈에 들어오는 걸까. 한 장의 그림 그리기로 인해 늘 함께한 세상까지 새롭게 보였다.
거실 복도에는 내가 그린 그림이 놓여 있다. 통창으로 햇살이 스며들 때면 봐달라고 나를 유혹하는 소리가 들린다. 햇살의 방향과 양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그림의 마법에 이끌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림 앞에 멈춰 선다. 공간과 이동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60대에 만난 취미가 안겨준 행복에 볼 때마다 설렌다. 언젠가 진짜 그림을 그릴 날이 오지 않을까. 나의 눈에, 가슴에 담아둔 인생의 한순간을 캔버스 위에 그려낼 그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