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도 국적이 있다.
'과학에는 국경이 있지만, 과학자에게는 국적이 있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buy), 살아가는(reside) 부동산, 혹은 집에도 국적이 있을까? 한국에서는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이, 서울에는 60% 정도가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apartment)는 17세기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파리, 런던, 뉴욕 등 서구권 나라를 중심으로 발달했고, 현재에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는 콘크리트로 지은 공동주택이다. 하지만, 한국의 아파트(apt)는 특별하다. 전세로 들어가 살다가, 청약 통장으로 자기 아파트에 들어가고, 오래된 아파트를 재건축해서 새 아파트로 바꾸고, 전 국민이 대부분의 재산을 몰빵 하는 아파트는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존재한다. 이처럼 한국의 부동산은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서 한국인의 성격이 정교하게 투영된 문화적 산물이다. 누구나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전 세계에서 유일한 현대 대한민국의 부동산 특성에 대해 분석하고 공유하면서, 기록해 보고자 한다.
한국인의 부동산을 이해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단연 교육열이다. 한국에서 집은 잠자는 공간이 아니라, 아이의 미래와 직결된 선택이다. 그래서 어디에 사는지가 자녀의 대학과 직업에 밀접하게 연관된다. 강남과 목동은 이 교육열이 공간 위에 새겨진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명문 학군과 학원가가 형성되자 주거 수요가 몰렸고, 주거 수요는 다시 가격을 끌어올렸다. 가격 상승은 곧 ‘검증된 지역’이라는 신호가 되었고, 이 신호는 다시 교육 인프라를 강화했다. 이렇게 교육–주거–가격이 맞물린 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형태를 넘어 교육 접근성을 담보하는 자산이 되었다. 한국의 부동산 광고가 조망보다 학군을 먼저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집의 가치가 삶의 질 이전에 미래 가능성으로 측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급하다.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낸 숨은 병기인 '빨리빨리' 주의는 한국의 부동산의 곳곳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집을 지어야 하는데 땅이 없으면,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풀어 신도시를 지어서 주택을 '속도감 있게' 공급한다. 노후한 주거지를 수선하고 리모델링하여 천천히 고쳐 쓰기보다는, 모두의 동의 없이도 주거지를 과감하게 허물고 새로 짓는 '재개발과 재건축'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정비사업을 제도화시켰다. 주택을 허물고 다시 짓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에 유례없이 20년 전에 개발된 신도시를 허물고 다시 신도시로 개발하는 '노후계획도시정비사업'까지 등장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이 속도를 제어하기 위한 장치 또한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재건축진단 제도는 노후 아파트를 주민 마음대로 철거하여 재건축하지 못하도록, 개발 과속을 방지하는 '한국형 과속카메라'이다.
한국인은 결과의 차이보다 기회의 불공정에 더 민감하다. 그래서 주택 시장이 전적으로 자본 논리에 맡겨져서 좋은 집(예를 들면 강남 아파트)이 세습된다면, 사회적 불만이 폭발힐 것이다. 이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등장한 제도가 바로 주택청약이다. 청약은 돈이 아니라 점수로 집을 살 기회를 배분한다. 무주택 기간, 부양가족 수, 청약통장 가입 기간 등은 행정편의적 기준이 아니라, 성실하게 살아온 시간에 대한 보상 체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집을 사는 일이 하나의 시험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로또 청약’이라는 말이 생겼고, 제도를 우회하려는 시도도 반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약 제도가 유지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그래도 공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절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물건을 그대로 쓰는 데서 만족하지 않는다. 개조하고, 조합하고, 효율을 극대화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 성향은 주택시장에서도 '전세'라는 독특한 제도를 낳았다. 전세는 주거이면서 금융이고, 금융이면서 투자다. 세입자는 거주 안정성을 확보하고, 집주인은 그 자금을 레버리지로 활용한다. 어느 부부가 5억 원의 집을 물려받고 현금과 대출을 합쳐 3억 원이 있다고 해 보자. 일반적인 사람들은 8억 원짜리 집에 들어가서 살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5억 원 집을 3억 원에 전세 주고, 학군 좋고 직장에서 가까운 10억 원짜리 집에 6억 (현금ㆍ대출 3억 원+전세금 3억 원) 짜리 전세로 들어간다. 몇 년 후에 물려받은 5억 원 집이 10억 원으로 가격이 올라 전세 보증금도 7억 원이 되면, 그간 불어난 현금ㆍ대출 6억 원과 합쳐서 20억 원짜리 집에 13억 원 전세로 들어가서 산다. 이렇게 갈아타기를 하면서, 자산을 증식해 나가는 '주거사다리'가 형성된다. 한국에서 집은 정적인 공간일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재배치되는 '전략적 자산'인 것이다.
또 하나의 한국 부동산의 키워드는 '비교 의식'이다. 우리는 집을 절대적 가치로 평가하지 않는다. 언제나 “어디와 비교하면”이라는 질문이 먼저 따라온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서울과 비서울, 서울 안에서는 강남 3구와 비강남으로 나눈다. 심지어 같은 동네에서도 역세권과 비역세권, 분양과 임대, S사가 지은 아파트와 L공사가 지은 아파트로 나누고 비교한다. 이 비교는 때로 극단적이다. 한 블록 차이로 자산의 위상이 달라지고, 학군이 달라지고, 계층이 갈린다. 그러나 이 비교성은 단순한 차별 의식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발전하고자 하는 한국인의 목표 지향성이 부동산에 투영된 결과다. 비교는 불안을 낳지만, 동시에 방향을 만든다. 한국의 부동산은 늘 “다음 단계”를 상상하게 하는 구조 속에서 움직여 왔다.
한국의 부동산은 늘 과열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얘기에 피로감을 느낀다. 그러나 조금 거리를 두고 보면, 부동산 시장은 한국 문화의 에너지가 가장 농축된 공간이기도 하다. 교육을 중시하고, 속도를 사랑하며, 공정을 요구하고, 효율을 극대화하고, 끊임없이 비교하며 더 나은 위치를 꿈꾸는 성향. 이 모든 것이 집이라는 공간에 스며 있다. K-pop이 세계 음악 시장에서 독자적 장르가 되었듯, 전세와 재건축, 청약과 아파트 문화는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고유한 주거 문법이다.
그래서 이 연재에서는 한국인의 부동산을 단순히 비판하거나 칭찬하기보다 왜 이러한 독특한 부동산 제도와 문화가 형성되었는지 이해해 보고자 한다. 나아가 앞으로도 이러한 'K-부동산'이 지속될 수 있을지도 고민해 보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한국 부동산의 형태, 금융, 건축, 시장 등에 대한 과거, 현재, 미래를 이해하는 여행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