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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베이스볼 Jul 11. 2017

[NC다이노스때문에산다] 1. 새로운 구도의 등장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금메달 (사진=중계화면캡처)





2010년 12월, 그 날 아침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연말이었고 모든 걸 마무리하는 분위기였다. 출근하여 짦은 회의를 마치고 습관처럼 책상에 앉아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을 보고 있었다. 잠깐 시선이 고정된 것은 실시간 검색어 때문이었다. '창원시'가 순위권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게 아닌가. 영문 모를 일이었다.



고작 검색어 하나에 반색하는 이런 행동이 촌스러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서울 사람들이야 모를 것이다. 이런게 지방과 수도권의 온도 차이라는 것을. 서울이라면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이 3분만 늦어져도 역명이 검색어에 오르내리고 난리나지 않나. 반면에 지방이라면 왠만한 사건·사고가 아니고서야 화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는 적어도 '전국을 강타하는 대형급 뉴스'가 창원에서 터졌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과거의 경험을 비추어 보건데 이 정도 이슈라면 재난이라던가 비보일 가능성이 높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우스 포인터를 '창원시'라는 단어로 갖다 대고 검지 손가락으로 딸각, 하고 눌렀다. 







신생 구단의 창단



그토록 나를 긴장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야구' 소식이었다. 프로 야구단의 신규 창단 기사가 모니터 화면을 빼곡히 메우고 말았다. 베이징올림픽 이후로 야구는 국민 스포츠로 급부상하였다. 야구장을 찾는 관중이 증가하면서 새로운 여가로 떠올랐다. 모든 매체가 야구를 주목하였고 실력있는 선수들은 국내외로 유명세를 얻었다.



신규 구단 창단의 필요성은 자연스럽게 대두되었다. KBO에서는 프로 야구단 2개 팀을 추가할 계획이 있음을 시사하였다. 그리고 순차에 따라 9번째 구단을 먼저 창단하기로 하였다. 9구단의 연고지로는 '창원시'가 선정되었다. 





2010년 10월, KBO와 창원시의 MOU체결 (사진=창원시)





창원시의 가장 큰 이점은 프로 팀이 즉각 사용 가능한 야구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양덕동에 위치한 마산 야구장에서는 롯데 자이언츠가 매 시즌마다 여섯 차례 경기를 치루고 있었다. 물론 1982년에 완공된 야구장은 굉장히 낙후되었고 경기 횟수도 드물어서 제대로 관리되진 않았다. 



새 식구를 허름한 곳간으로 내몰 이유가 있을까. 창원시는 신규 야구단을 유치하는 조건으로 새 야구장 건설 공약을 걸었다. 수 백 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미국 메이저리그 급의 최신식 경기장을 세우기로 하였다. 파격적인 약속이 아닐 수가 없다. 박수받는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신규 야구장 완공 전까지 프로 팀이 사용할 수 있도록 기존의 마산 야구장에도 억대 예산을 투입하여 리모델링 할 계획이다. 인기 스포츠 유치를 위하여 창원시도 노력을 기울였다.






리모델링 이전의 마산야구장 전경 (사진=구글검색)







창원, 새로운 구도(球都)



창원시는 본래 마산시와 창원시, 진해시로 이루어진 개별적인 지방자치단체였다. 이를 묶어 '마창진(마산,창원,진해의 머릿말)'이라고 불렀다. 별칭이 보여주듯 세 지역은 동일 생활권이었다. 마산에서 출발하는 버스의 종착점은 창원이었고 택시를 타고 경계를 넘나들어도 시외 요금이 적용되지 않았다. 행정의 낭비를 막고 도심 개발에 힘쓰자는 뜻으로 2010년 7월에 세 개 지자체는 창원시 산하 5개 구로 통합되었다.



특별·광역시를 제외하면 인구 100만 명이 넘는 이남 최대의 도시로 창원시는 재탄생하였다. 시 명칭은 시민 공모를 통하여 뽑았다. 지역의 특성을 살린 가고파시, 합포시, 가야시 등이 나왔으나 최종적으로 '창원'이라는 이름을 고수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물론 반발의 목소리도 있었다. 마산을 홀대하는 것이냐는 둥, 진해는 뒷전이라는 둥. 관련 기관에서는 조선 시대부터 쓰던 '창원()'이라는 이름이 가장 오래되었다는 이유를 들기도 하였다. 연식보다는 그간 창원이 지닌 녹색도시, 행정도시 등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은 아닐까 싶다.



통합되어도 일상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마산시'로 시작하던 주소지가 '창원시 ○○구'로 바뀐 정도였다. 의외로 불편함은 시내가 아닌 외지에서 겪고 있었다. 명칭을 그대로 고수하다 보니 꼭 이런 질문을 받았다. 



"저는 창원 살아요."

"창원이라면... 통합되었죠? 옛날 창원 쪽, 아님 마산 쪽?"



그래서 다른 자리에서는 먼저 선수쳐서 말하기도 하였다.



"저는 마산 살아요."

"마산이라면... 통합되었죠? 창원 아니예요?"



비단 곤란함은 개인적인 일로 그치지 않았다. 언론에서도 늘상 '통합 창원시'라는 표현을 썼다. 그냥 창원이라고 하면 의창구와 성산구(구 창원지역)에 국한되는 내용인지 아닌지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어느 지구는 이득을 혹은 손실을 보았다는 등의 불필요한 분쟁도 일어났다. 창원시가 통합에 있어 가장 자랑스럽게 강조하는 점은 3개 시민이 자발적으로 추진하였다는 부분이었다. 허나 통합한지 반 년이 지나도록 민심은 안정되지 않고 마찰이 불거졌다. '통합 창원시'는 고민에 빠졌다. 묘안을 찾아야만 하였다.










<목차> NC다이노스 때문에 산다

1. 새로운 구도의 등장

2. 게임회사의 도전

3. 갈매기의 방해 공작

4. 창단을 향한 의지

5. 발판 마련

6. 감독님 모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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