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구단 창단 소식으로 시끌시끌한 것도 잠시, 곧 시즌이 개막하고 8개 팀은 분주한 시간을 보내었다. 그 속에서 NC다이노스는 홀로 조용히 커 나가고 있었다. 선수 소집, 지자체와의 협업, 팀 명과 엠블램 선정, 대표 캐릭터 탄생 등 야구단의 기본을 채워 나갔다. 하나씩 프로 구단의 모습을 맞추는 중이었다.
이 즈음 NC다이노스에서는 구단 전용 페이스북을 개설하였다. 상대적으로 언론 노출의 기회가 적은 신생 구단에게 SNS 활용은 좋은 방안이었다. 팬들은 구단의 소식을 가장 먼저 이 곳에서 접할 수 있었다. 게다가 뉴스 기사로는 보기 힘든 소소한 이야기, 훈련 에피소드, 선수들의 민낯 등 팀의 생생한 모습이 팬들에게 전달되었다. 팬들과 NC다이노스는 조금씩 친근감을 형성할 수가 있었다. 이런 노력으로 NC다이노스는 국내 프로스포츠(축구,야구,배구 등) 구단 중에서 최초로 페이스북 팔로어(구독자) 10만 명을 확보하였다.
한편, 신인 지명까지 얼추 끝낸 이 팀에게 남은 가장 큰 과제는 '감독 선임'이었다. 신규 팀의 창단 감독이라는 자리는 첫 번째 수장이라는 점에서 의미있다. 동시에 무척 부담가는 자리가 아닐 수 없다. 새 팀의 컬러를 만들어 나가고 온전하게 이끌어 나가야 하는 건 오롯이 감독의 몫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20년 만에 신규 창단하는 팀. 이 팀이 부디 낡은 병폐는 씻어내고 새 시대에 걸맞는 팀으로 태어나길 바라는 목소리가 컸다. 어떤 '새로움'을 보여주길 원하였다. 팬들의 단순한 소망을 넘어 대한민국 야구계의 바램까지, 9구단을 향한 기대가 만만치 않았다.
맨 먼저 거론된 사람은 김성근 전 SK와이번스 감독이었다. 재일교포 출신인 그는 학창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었다. 1961년 한국의 실업야구리그에서 뛰면서 한국 야구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그는 SK와이번스에서 2007년부터 네 시즌을 맡았고 이 중 세 차례 우승, 한 차례 준우승을 거두었다. 감독이 한 팀을 맡아 우승 한 번을 얻기도 어려운게 현실인데 그걸 세 번이나 해내다니. 그의 지도력은 단숨에 야구 안팎에서 인기를 얻었다. 시대적 열등감(재외교포)을 극복하고 최정상에 오른 김성근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자 기업과 대학, 단체에서 강의 요청이 줄을 이었다.
최우수 성적표와도 같은 리그 우승을 세 번이나 차지하였지만 김성근 감독은 5해 째인 2011시즌 도중에 SK에서 사임하였다. 화려함 이면에서 감독과 프런트는 꾸준히 마찰을 빚어 왔고, 이견을 좁히지 못 하여 이런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사임 후 김 감독은 잠시 일본에 머물다가 귀국하였다. 중고교 야구부 지도자로 재임 중인 제자들의 요청으로 각지를 방문하여 야구 소년들에게 조언도 하고 지도를 봐주기도 하였다. 이런 일정 중에는 마산용마고가 끼여 있었다. 김 감독의 창원 방문을 두고 NC 차기 감독설이 오갔으나 구단 측은 확정된 바가 없다며 소문을 일축하였다.
두산의 수장이던 김경문 감독 역시 2011시즌 중에 자진 사임하였다. 그는 2004시즌부터 줄곧 두산 베어스 감독으로 지냈다. 장 기간 팀을 맡아 이끌면서 두산의 컬러를 확고하게 만들었고, 특히 선수를 길러내는 눈이 탁월하여 화수분 야구로 주목 받았다. 프로 야구 감독 재임 중에도 국가대표팀 야구 감독을 맡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었다. 실려있는 지도자로 정평이 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김경문 감독의 돌연 사임 소식은 많이 놀랄 수 밖에. 감독은 현재 팀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임하노라고 입장을 밝혔다. 당시 두산 베어스 소속의 선수가 구설수에 오르면서 팀은 맹비난을 받았다. 내부 분위기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또한 주전급 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성적도 초라하였다. 김경문 감독의 취임 이후 두산 베어스는 2006시즌 한 해를 제외하고 줄곧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만큼 전력이 탄탄한 팀이었다. 허나 김 감독의 사임 당시 두산 베어스는 6위까지 내려 앉았다.
김경문 감독은 곧장 미국으로 출국하였다. 주변과의 연락도 일시적으로 끊었다. 내년 초 즈음 귀국을 계획한다며 잠시 여유를 갖고 지낼 생각임을 밝혔다. 당분간 야구판을 떠나 지낼 것으로 보였지만 여전히 그의 야구를 지지하는 팬들은 많았다. 특히 NC팬들은 초대 감독으로 김경문 감독을 희망하였다. 선수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지도력이 탁월한 부분을 초대 감독의 강점으로 꼽았다.
NC가 초대 감독 선임을 앞두고 있던 시기에 유독 거물급 지도자들이 휴식기를 갖고 있었다. 김인식 당시 KBO규칙위원장은 어느 방송에서 자신의 야구 인생을 돌아보며 1000승을 채우지 못 한 아쉬움을 표현하였다. 기회가 된다면 현장으로 돌아가서 승리를 거두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선동렬 전 삼성라이온즈 감독 역시 2010시즌을 끝으로 팀과 작별하였다. 현역 시절, 타이거즈의 간판으로 어찌 보면 롯데 텃밭이었던 마산 아재들과는 라이벌이지만 에이스의 노련함 앞에서 따질 일은 아니다. 직전 시즌까지 계속 팀을 이끌어 온 지도자이기에 현장 감각이 여전하리라는 기대감이 컸다.
깜짝 후보도 있었는데,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자이언츠 감독은 한 메체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한국이 날 다시 불러준다면 갈 의향이 있다'고 밝혀 넌지시 신생 팀과 함께 할 의향이 있음을 비추기도 하였다. 만약 그렇다면 NC는 초대 감독을 외국인으로 맞이하는 이례적인 기록을 갖는 셈이기도 하다. 수려한 지도자들 중에 누가 이 초짜배기 팀을 맡아줄 것인가. 2011년 8월의 여름은 끝물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목차> NC다이노스 때문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