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팬사이키즘과 만물유심론의 가능성
밤하늘을 바라볼 때 나는 가끔
우주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을 한다.
별빛이 내 눈에 닿는 찰나,
수천 년 전의 시간이 나와 이어지는 듯한 묘한 감각.
그럴 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의식’은 정말 나에게만 있는 걸까?
아니면 저 광대한 우주도 이미 어떤 형태로든 생각하고 있는 걸까?
별을 바라보는 단순한 행위가
어느새 나와 우주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
거대한 흐름 속을 잠시 통과하는 ‘의식의 한 점’처럼 느껴진다.
이 사유는 고대부터 이어져 왔다.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만물은 신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고, 스피노자는 신과 자연을 동일한 실체로 보았다.
이후 현대 철학에서 이러한 사고는 팬사이키즘(Panpsychism)으로 발전했다.
팬사이키즘은 모든 존재가 어떤 형태로든 의식 또는 정신적 성질을 지닌다고 보는 관점이다.
돌, 나무, 강, 별에 이르기까지 우주는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체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lmers)는 ‘의식의 어려운 문제(hard problem of consciousness)’를 설명하기 위한 가능성으로 팬사이키즘을 제시했다.
그는 “두뇌의 신경 신호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알지만, 그 과정이 왜 ‘느낌’과 ‘경험’으로 이어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한다.
즉, 우리는 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할 수 있지만
‘기쁨’, ‘두려움’, ‘슬픔’ 같은 주관적 경험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이것이 바로 ‘의식의 어려운 문제’이며, 팬사이키즘은 그 해답을 우주 자체의 본질에서 찾고자 하는 사유다.
물리학자 막스 테그마크(Max Tegmark)는 우주를 수학적 구조로 이해하면서도 의식이 그 구조의 일부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양자역학에서는 관측 행위가 현실을 확정한다는 점에서 의식이 물리적 세계의 형성에 관여할 가능성이 꾸준히 논의된다.
관찰자가 없다면 현실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여전히 물리학과 철학의 경계에서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주류 과학은 팬사이키즘을 실험적으로 검증하기 어렵다고 본다.
뇌의 신경 신호를 통해 감정과 사고의 과정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왜’ 우리는 경험을 느끼는가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우주와의 연결은 거창한 철학이 아닌 일상 속에서도 문득 찾아온다.
새벽의 공기 속에서 별빛을 바라볼 때, 나는 나 자신이 거대한 흐름의 일부라는 확신을 느낀다.
숲이나 바다 앞에서는 자연이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스스로 호흡하는 생명체처럼 다가온다.
또한 누군가와 깊이 교감하는 순간, ‘나’와 ‘타인’의 경계가 잠시 사라지고 하나의 흐름 속에서 같은 진동을 나누는 듯한 감각이 밀려온다.
이런 경험은 단순한 감정의 착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의식이 단지 개인의 내부에 머무르지 않고, 더 큰 체계의 일부일 가능성을 보여준다.
의식은 뇌의 전기적 신호로만 설명될 수 있을까?
아니면 우주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나 역시 하나의 파동처럼 작동하고 있는 존재일까?
그렇다면 우주는 단순히 인간을 품은 배경이 아니라,
스스로 인식하고 반응하는 하나의 ‘의식적 전체’일지도 모른다.
〈같이 질문해보기〉
• 나는 언제 우주와 연결된 듯한 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 의식은 뇌의 산물일까, 아니면 물질의 본질적 속성일까?
• 만약 우주 전체가 의식이라면, ‘나’는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