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수행처
누가 풀밭에 빨간 모자를 하나 놔두고 갔다. 엄청 큰데. 놔둔 지 오래돼서 그런지 1985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초원에 덩그러니 혼자만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비교할 만한 것이 없으니 얼마나 큰지는 잘 모르겠다. 그 모양은 피라미드라고 하나 누구는 밀짚모자라고도 한다. 내 보기에는 붉은 벽돌담 안에 창 넓은 벙거지를 쓴 여인이 서 있는데 모자만 보이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하지만 어디 하나 어정쩡한 모습이 없고 찌그러진 곳 하나 없는 반듯한 모습이다. 방글라데시 최고의 고고학 유적지 중 한 곳이라고 하는 솜푸르 모하비하르(Sompur Mahavihara)는 이런 모습으로 내 안으로 들어왔다.
세계에서 가장 관광객이 적은 나라로 알려진 방글라데시에도 볼만한 곳들, 유적들이 있다. 이번 여행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솜푸르 모하비하르였다. 호텔을 떠난 자동차는 시골길을 돌고 돌아 5시간 만에 솜푸르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자마자 지축을 흔들고도 남을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트럭의 짐칸에 올라타고 빵빵 울리는 앰프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학생들이었다. 1톤 봉고 정도 되는 트럭이었는데 20여 명, 콩나물시루의 콩나물만큼이나 많이 탔다. 사람이 춤을 추는 건지 차가 춤을 춰 사람이 움직이는 모를 일이었다. 운전기사는 창에 팔을 걸치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떨어지지나 않을까, 아이들에게 뭐라 해야 하나, 차에게 뭐라 해야 하나 생각하는데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그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 관심 속에서 솜푸르를 맞으러 갔다.
매표소를 통과하면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옆 정원에는 코를 치켜든 코끼리, 우아하게 앉아 솜푸르를 응시하는 공작이 있다. 모두 정원수로 만든 모양들이다. 그 옆으로 연꽃이 가득했을 연못이 있다. 연못에 비친 솜푸르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연못 너머에 나무를 심어 솜푸르의 모습은 나무 뒤에 숨어 어른 하게 보였다.
날이 흐린 탓도 있겠지만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습기를 머금어 짙어질 대로 짙어진 뻘건 벽돌 색깔이 그렇고, 까슬까슬하게 돋아난 풀밭이 그랬다. 붉은 벽돌이 꺼멓게 변해가는 세월의 더께가 그랬다. 본 건물 주위에는 성벽을 빙 둘렀을 만한 터가 남았다. 사람 한 키 남짓이다. 붉은 벽돌로 박스처럼 담을 쌓고 그 안에 납작한 벽돌을 깔아 걷는 데 불편함을 덜어냈다. 이 담 안에는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보았지만, 건물 뒤에 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그나마 녹색의 초원 위에 하얗게 핀 삐비꽃이 뻘건 건물을 돋보이게 했다. 본 건물은 중앙의 둥근 모서리 사각 건물을 중심으로 십자형이다. 네 군데로 출입할 수 있도록 했다. 바닥에 기단을 쌓고 그 위로부터는 좁아지면서 층층이 올려 쌓은 형태다. 그렇다고 각진 모습이 아니고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가졌다. 문득 충남도청 건물의 겉모습을 여기서 본떴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층층이 맨 아래에는 다리를 쩍 벌리고 선 사람이며, 코끼리며, 물고기가 8세기 모습의 테라코타로 남았다. 최종 건물의 형태는 위가 뾰족한 돔을 이뤘다. 아마 이것을 돔이라고 하면 세계 최초의 돔일 것이다. 야구 정도는 충분히 할 것 같은 규모다.
뒤로 돌아가 보면 두 그루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구경하다 지친 사람들을 쉬라고 살랑거렸다. 본 출입구는 철조망으로 대충 막아 사람들의 통행을 차단했다. 전에 이리로 꼭대기까지 올라 다녔을 터다. 까마득하게 보인다. 아마 햇빛이 반짝 드는 날이면 꼭대기를 전망대 삼아 ‘망중한’을 즐겼거나 볕을 쪼이려는 수도승들이 올라앉았을 터였다. 하지만 그 꿈들은 사라졌다.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어떤 문화적 충격에 의해 시간은 멈추고 수도원은 고고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붉은 공간으로 남았다.
「이곳은 8세기에 히말라야 남쪽에서 두 번째로 큰 불교 수도원이다. 전성기엔 승려들이 고등 교육을 받기 위해 이곳이 왔던 당대 최고의 불교 사원 중 하나였다.」라는 말만 남긴 채 말이다.
지금 방글라데시는 한국어 교육 열풍이다. 8세기 이곳에서는 뭘 공부했을까? 붉은 벽돌 군데군데 문으로 보이는 사각의 구멍으로 그때 그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 귀를 기울여 보았다. 불경을 외고 목탁을 두드린다. 아마 이런 공부를 했을 것이다.
➀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게 된다. 이것이 생기기에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멈추면 저것도 멈춘다.
➁ 마음이 일어나면 수많은 세계가 생겨나고, 마음이 꺼지면 수많은 세계가 사라진다.(대승기신론)
➂ 모든 일은 마음이 근본이다.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어우러진다. 바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괴로움이 그를 따른다. 수레바퀴가 소의 발자국을 따르듯이, 모든 일은 마음이 근본이다.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맑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즐거움이 그를 따른다. 그림자가 그 주인을 따르듯이(법구경)
➃ 수레가 안 간다면 소를 쳐야 하는가, 바퀴를 쳐야 하는가!
➄ 바람 퍼덕이는 저 깃발을 보아라, 펄럭이는 것은 그 깃발인가 바람인가?
➅ 수도원으로 들어가려는 고승을 붙잡고 시비를 거는 땡땡이 중의 모습도 보이는 듯하다.
“(떠돌이 중이 시비를 겁니다.) 스님 불법(佛法)이 어디에 있습니까?”
“(가슴을 내밀며) 내 가슴속에 있다.”
“(칼을 들이대며) 정말 있는지 가슴을 열어봐야겠습니다.”
“(웃으면서 시 한 수 읊습니다.) 때가 되면 해마다 피는 산 벚꽃, 벚나무 쪼개 봐라 벚꽃이 있는가.”
이 정도면 꽉 막힌 사원 안에서 몇십 년은 공부해야 터득할 수 있는 진리 아닐까? 그 안에서의 생활을 짐작할 수는 없지만 답답하긴 했을 것이다.
1300년대 중세 이탈리아의 수도원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른 소설 <장미의 이름>(움베르토 에코)에 묘사된 수도원의 모습은 음침함이었다. 그래서 수도원이 있는 자리도 벼랑 끝이나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었다. 그 안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전통적인 교리만을 절대적 진리로 생각하는 낡은 권력의 상징 ‘호헤르’ 수도사와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하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좋아해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는 ‘윌리엄’ 수도사. 두 수도사가 사건을 해결해 가는 지략싸움이 볼만한 소설이다. 아마 여기 솜푸르도 그런 사건 하나쯤 품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들어가서 찾아보면 좋겠다. 그런데 들어갈 수도 없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무 계단을 유적 꼭대기까지 설치해서 안을 관람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훼손이 심해서 중단했다고 한다. 먼저 갔던 사람들은 그 안에서 수업 현장을 모습을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솜푸르 모하비하르’ 잘 둘러봤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한 바퀴 빙 둘러봤지만 방글라데시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3곳 중 한 곳을 본 것이다. 시멘트 없이도 단단하게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보았고, 거대한 사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찍었다. 성벽에서 가위 바위 보를 하던 천진함을 보여줬고, 현지 사람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으면서 방글라데시에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문화재의 의미와 어떤 관리가 필요한지도 알 수 있었다. 8세기 코끼리가 지금의 코끼리와 같다는 것을 알았고, 예전의 물고기는 지금보다 머리가 컸다는 것을 보았다. 그 당시 사람들은 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도 테라코타를 통해 보았다. 위대한 것도 사라지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사라져 가고 있기에 위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허물어져 가는 것이라 해도 다음을 사는 사람들을 위해 온전하게 보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느낀다. 한 나라의 역사를 보는 것은 그 나라의 삶을 통째로 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무슬림의 나라(방글라데시는 이슬람을 국교 정함)에서 번성했던 힌두 문화, 방글라데시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알려면 더 많은 유적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라즈샤히 시내를 떠나 촌으로 시골 동네를 돌고 돌아 솜푸르를 찾아갔고 또 라즈샤히로 돌아왔다. 오랜 시간 달리고 덜컹거리고 오토릭샤 꽁무니를 따라다녀 긴 하루였지만 동글동글한 하루였다. 여행 내내 함께 했던 우리들의 마음이 동글동글해서 그런 것이리라 생각한다. 오랜 이야기로 지루하지 않게 해 준 선생님, 웃음 준 센스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한 손길, 서로서로 아끼고 도와주면서 움직이던 모든 모습은 아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노래 ‘바람이 분다’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여러분의 추억을 어떻게 적혔는지 알려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