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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함께

나는 사과를 먹었는데, 아버지는 계절을 보냈다

봉투로는 전해지지 않던 마음의 온도를 알게 된 날

by Altonian Camino

사과는 늘 집으로 ‘도착하는 것’이었다.

가을 끝자락이면 현관 앞에 놓인 상자를 열어

붉고 단단한 사과를 하나씩 꺼내 먹었다.


그 사과가 어떤 하루를 지나왔는지,

어떤 손끝을 거쳐 내 식탁에 올랐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나는 그저 익숙한 방식으로 마음을 전했다.

“아버지,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봉투 하나를 넣어 드렸다.

그게 성인이 된 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예의 있는 표현이라고 믿으면서.


그런데 문득,

이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을

내 눈으로 확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아버지께 내려갔다.


이번에는 사과를 함께 따보고 싶었다.


겨울의 초입.

아침 공기는 유리처럼 차갑고 깨끗했다.

그 속에서 사과는 마지막 단맛을 익힌다고

아버지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말은 짧았지만

그 말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은 길었다.


아버지는 사과나무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가지의 기울기, 햇빛의 방향,

며칠 전 내린 비가 흙에 남긴 흔적을 살폈다.

나는 그 손길을 뒤에서 따라가며

뒤늦게 배우는 학생 같았다.


사과를 따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섬세했다.


너무 세게 잡아도 안 되고,

때를 놓치면 금세 상처가 난다.

햇빛을 덜 받은 면은 어느 쪽인지,

언제 들어 올려야 톡 하고 떨어지는지,

그 모든 판단을

아버지는 몇십 년의 감각으로 대신해주고 계셨다.


한 알의 사과 안에는

과일의 수분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시간, 계절, 기다림이

겹겹이 쌓여 있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해가 기울 무렵,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남겨둔 사과를 따서

내 손에 조심스레 올려두셨다.


“이게 올해 제일 잘 익었다.”


그 말 안에는

비가 너무 내려 걱정하던 밤,

해가 나지 않아 마음이 무거웠던 아침,

찬 바람에 혹시 상하지 않았을까

며칠이고 들여다보던 마음이

조용히 스며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그동안의 감사가 너무 가벼웠음을

조금 부끄럽게 깨달았다.

내가 드렸던 봉투와 짧은 인사는

아버지의 계절에 닿지 못한 말들이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따주신 사과를 베어 물었다.

사각, 하고 맑은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과일의 소리가 아니라

아버지의 삶이 내 입안에서 부서지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달콤함은

그저 과육의 단맛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견뎌온 바람이었고,

아버지가 믿어온 기다림이었고,

아버지가 혼자 감당해온 계절의 결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사과를 먹었지만,

아버지는 계절을 보내고 계셨다는 것을.


고마움을 전하는 데 필요한 것은

말도, 봉투도 아니었다.

그 사람의 시간 속에

한 번이라도 직접 들어가 보는 일이었다.


나는 올해 겨울의 초입에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사과의 단맛처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깊어지고 있다.


누군가가 오랫동안 보내온 마음을

뒤늦게야 이해했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당신에게도

이런 ‘사과 한 알’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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