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 상담실 문을 연 것은 스물일곱 살 정우진 씨였는데,
그는 명함도 없이 손에 스마트폰만 꼭 쥔 채 들어왔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군대까지 다녀온 그는 이제 막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6개월째 계속되는 불합격 통보에 지쳐 있었습니다.
"작은 회사에서는 연락이 오는데요, 전 거기는 안 가고 싶어요.
대기업에 가고 싶거든요"라고 그는 말했고, 그의 목소리에는 확신과 동시에 깊은 불안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우진 씨는 명문대 대학원을 졸업했고 학부 때도 괜찮은 성적을 유지했으며,
군대에서도 모범적으로 복무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대기업 공채에 10번 넘게 지원했지만 서류 전형에서 번번이 탈락했고,
간신히 통과한 몇 군데에서는 면접에서 떨어졌으며,
최종 면접까지 갔던 곳에서도 결국 "아쉽게도 이번에는 인연이 되지 못했습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중소기업에서는 연락이 와요.
면접 보러 오라고, 당장 내일이라도 출근할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우진 씨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 거기 안 갈 거예요. 제가 왜 대학원까지 나왔는데 그런 데를 가야 하나요?
제 스펙이면 대기업 갈 수 있어야 정상 아닌가요?"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좌절이 섞여 있었지만,
동시에 어딘가 떳떳하지 못한 듯한 떨림도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채용 공고를 확인하고,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서류 접수 마감일을 체크하며,
자기소개서를 수정하고 또 수정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소개서에 쓸 새로운 내용은 줄어들었고,
"대학원에서 배운 전문 지식을 활용하여"로 시작하는 문장들은 점점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동기들은 하나둘 취업에 성공했고, 어떤 친구는 대기업에 들어갔으며, 어떤 친구는 스타트업에 들어가 이미 팀장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들은 운이 좋았던 거예요. 저보다 스펙이 낮은 애들도 들어갔는데, 저만 안 되는 게 말이 되나요?"
가장 힘든 것은 집안의 시선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전업주부였는데, 부모님은 우진 씨가 대학원까지 나온 것을 자랑스러워하셨고 당연히 대기업에 갈 것이라 기대하셨습니다.
"우리 아들 대학원 나왔어요. 곧 대기업 들어갈 거예요"라고 친척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우진 씨는 알고 있었습니다. 명절 때마다 친척들이 "취업은 했어?"
"어디 들어갔대?" 하고 물어올 때마다 우진 씨는 "아직 준비 중이에요"
"좋은 곳 알아보고 있어요"라고 대답했지만, 그 대답은 점점 무게를 잃어갔습니다.
"제 후배는 학부만 나오고 중소기업 들어갔는데, 벌써 연봉이 4천만 원이래요."
우진 씨는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그 친구 부모님은 아들이 취업했다고 좋아하시던데, 전 아직도 백수예요.
부모님은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네 스펙이면 충분히 좋은 데 갈 수 있어' 하시는데,
저는 확신이 안 서요.
정말 갈 수 있는 건가? 아니면 제가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통장 잔고는 점점 줄어들었고,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커피 한 잔 값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취업 준비생이라는 게 이렇게 초라한 거예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기분이에요. 중소기업이라도 들어가면 적어도
'직장인'이라는 정체성은 생기잖아요.
하지만 전 그러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거기 가는 순간, 제가 지금까지 쌓아온 게 다 무너지는 것 같거든요."
나는 한참을 침묵하며 우진 씨의 이야기를 곱씹었습니다.
그의 고통은 단순히 취업이 안 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쌓아온 스펙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혼란이었고, '
대기업'이라는 상징에 자신의 모든 가치를 걸어버린 데서 오는 불안이었으며,
부모님과 사회가 기대하는 성공의 이미지와 자신의 현재 상태 사이에서 느끼는 수치심이었습니다.
"우진 씨, 당신이 대기업에 가고 싶은 진짜 이유가 뭔가요?" 나는 천천히 물었습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습니다.
"안정적이잖아요. 연봉도 괜찮고, 복지도 좋고, 사람들에게 말할 때도 당당하고요.
부모님도 좋아하시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중소기업은 왜 싫은가요?" 우진 씨는 잠시 말을 잃었다가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창피해요. 제 스펙이면 대기업 갈 수 있는데 중소기업 간 거잖아요.
그럼 사람들이 '쟤는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간 거지' 하고 생각할 것 같아요."
"우진 씨, 당신은 지금 '대기업'이라는 간판을 사려고 하는 겁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일 자체가 아니라, 그 회사의 이름이 당신에게 주는 사회적 지위와 인정을 원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나쁜 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인정받고 싶어 하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그 인정을 얻기 위해 당신이 지금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느냐는 겁니다."
우진 씨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6개월 동안 백수로 지내면서 매일 불합격 통보를 받고,
통장 잔고는 바닥나고, 친구들은 다 취업해서 앞서나가는데 저만 제자리에 있어요.
이게 대가라는 건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당신이 거부하고 있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는 동안, 당신은 여전히 '언젠가는'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겁니다."
"우진 씨, 제가 하나 물어볼게요."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만약 지금 당장 대기업에 합격한다면, 당신은 거기서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우진 씨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건...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대학원에서 배운 걸 활용할 수 있는 일이요?"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요? 기획? 연구? 영업? 관리?" 우진 씨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목표였지,
거기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성장할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반면 당신이 무시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당신에게 구체적인 역할을 제안하고 있어요.
'이 일을 맡아줄 수 있느냐'라고 묻고 있죠.
어느 쪽이 더 당신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걸까요?"
우진 씨는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불안정하잖아요.
언제 망할지 모르고, 복지도 별로고, 연봉도 낮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습니다. 그런 면도 있죠. 하지만 대기업도 안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구조조정도 있고, 경쟁도 치열하고, 때로는 스펙만 좋은 사람은 도태되기도 해요.
중요한 건 '어디'냐가 아니라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하느냐'입니다."
"우진 씨, 당신의 대학원 동기 중에 대기업 간 사람들 있죠?" 나는 물었습니다.
우진 씨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지금 행복해 보이나요?" 우진 씨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글쎄요. 어떤 친구는 야근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하고,
어떤 친구는 회사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어서 답답하다고 해요. 하지만 그래도 대기업이잖아요."
"'그래도 대기업'이라는 말속에 당신의 모든 문제가 담겨 있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대기업이라는 간판이 당신의 모든 불만을 상쇄해 줄 거라고 믿고 있어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기업에 들어가도 당신이 하는 일이 의미 없다면,
성장할 기회가 없다면, 당신은 여전히 불행할 겁니다."
우진 씨는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중소기업에 가라는 건가요?
제가 지금까지 쌓아온 게 다 무의미해지는 건가요?" 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요. 당신이 쌓아온 것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어디서 어떻게 활용할지를 당신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진 씨, 제가 과제를 하나 내드릴게요." 나는 말했습니다.
"다음 주까지 두 가지 목록을 만들어 오세요.
첫 번째는 '대기업에서 내가 하고 싶은 구체적인 일' 목록이에요.
막연하게 '안정적인 직장'이 아니라, '이런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 '이런 기술을 배우고 싶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처럼 구체적으로요."
"두 번째는 '내가 지금 당장 배우고 싶은 것' 목록입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어디서든 배울 수 있는 기술, 경험, 지식이 무엇인지 적어보세요.
그리고 그 두 목록을 비교해 보세요. 어느 쪽이 더 당신의 진짜 성장과 가까운지를요."
우진 씨는 망설이다가 물었습니다.
"그럼... 중소기업 면접 제안 온 거, 가봐야 하나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가보세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궁금해서' 가보는 거예요.
그 회사가 당신에게 무엇을 제안하는지,
당신이 거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요.
그러고 나서 결정하세요. 대기업을 더 기다릴지, 아니면 지금 시작할지를요."
우진 씨가 상담실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대기업'이라는 하나의 길만을 정답으로 가르쳐왔고,
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실패로 여기도록 만들어왔습니다.
부모님은 자녀가 대기업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친척들은 "좋은 대학 나왔으면 대기업 가야지" 하며 압박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너 어디 다녀?"
하는 질문에 대기업 이름을 대는 것만이 당당한 대답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대기업이 모든 사람에게 정답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대기업의 시스템에서 빛을 발하지만, 어떤 사람은 작은 회사에서 더 큰 성장을 이룹니다.
어떤 사람은 안정을 원하지만, 어떤 사람은 도전을 원합니다.
중요한 건 '어디'가 아니라 '왜'입니다. 왜 그곳에 가고 싶은지, 거기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것이 진짜 나의 선택인지 아니면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것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우진 씨는 6개월 동안 대기업만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지만,
정작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몰랐습니다. 그는 '대기업 사원'이라는 타이틀을 원했지,
'이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그는 자신이 가진 기회들을 거부하고,
불확실한 미래만을 기다리며,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진 씨는 아직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스물일곱 살이고, 대학원을 졸업한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중소기업에서라도 그를 원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대기업의 문이 열릴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거기서 배우고 성장하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대기업은 목표가 아니라 선택지 중 하나일 뿐입니다.
진짜 목표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여야 합니다.
명함에 찍힌 회사 이름이 아니라, 당신이 쌓아온 경험과 능력이 당신을 정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과 능력은 대기업에서만 쌓이는 것이 아닙니다.
창밖으로 봄비가 내립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대기업 합격 소식을 받고, 누군가는 불합격 통보를 받으며,
누군가는 중소기업에서 첫 출근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디에 합격했느냐가 아니라, 그곳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성장할 것이냐입니다.
우진 씨가 다음 주에 중소기업 면접장에 가기를,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를,
혹은 적어도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가 '대기업 사원'이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이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나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아직 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진짜 성공은 어느 회사에 들어가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