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알레르기
맵고 긴 겨울이 끝나고 개울가 가장자리에 버들강아지가 살랑이는 봄이 왔다.
엄마가 오일장에서 6학년이 되는 언니 운동화만 새로 사 오셨고 나는 해진 운동화를 물려받았다. 다른 건 몰라도 운동화는 발 크기도 안 맞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며 핏대를 세웠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빠듯한 살림에 엄마도 얼마나 힘드실까 얼핏 이해를 하면서도 새건 당연히 자기거라 생각하는 언니를 보면 얄미웠다. 동생의 설움이 하늘의 별만큼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나는 단념도 잘했다. 그렇게 덜컹거리는 신발을 신고 쫓아다니다 보니 이내 마을 어귀에 조팝꽃이 만발했다.
네모반듯한 들녘은 모내기 준비가 한창이었고 밤이 되자 개구리울음소리는 더 요란해졌다.
저녁상을 물리자마자 언니 옆에 엎드렸다.
“웬일이야, 책을 다 펼치고?"
"우리 담임선생님 별로인 것 같아."
"언제는 숙제 조금 내줘서 좋다고 하더니."
“아니, 국어 숙제가 동시 짓기야. 책에 있는 거 그대로 옮겨 적는 것도 힘든데 동시를 어떻게 쓰냐고. 백일장 어쩌고 하시는데 여하튼 다 검사하실 거래.”
글짓기 이런 건 원래 타고나야 하는 건데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동시를 쓰라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투덜거렸다.
“제목부터 정해야지. 뭐로 할 거야?”
어쩐 일로 언니가 내 숙제에 관심을 보였다.
“몰라. 주제가 어버이날이야.”
“그럼, 제목은 '엄마'로 하면 되겠네. 이제 써봐.”
“뭘?”
“동시!, 엄마 하면 막 떠오르는 거 없어? 고마움, 따뜻함, 그리움, 그런 거 쓰면 돼.”
꼭두새벽에 일어나 맛있는 밥 해주시니 고맙고 손이 따뜻하시고 늘 보니까 그립지는 않은 것 같은데 도대체 뭘 어떻게 쓰라는 걸까.
숙제를 하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집중하기는 처음이다. 갑자기 두통이 밀려왔다.
겨우 몇 줄 써놓고 끙끙 앓는 내가 안돼 보였는지 언니가 하던 공부를 제쳐놓고 내 공책을 당겼다.
“4연 정도 쓰면 되니까, 뒷부분은 내가 마무리해 볼게.”
언니는 긁적긁적하더니 동시를 완성해서 읊기 시작했다.
내가 들으면 뭘 아나? 졸음이 쏟아졌다. 입을 크게 벌려 하품을 하는데 언니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슴속 저 밑에서 찌릿, 짧은 전율이 흘렀던 것 같다.
“네 수준에 맞게 대충 썼어. 한 번 더 봐봐.”
“됐어. 고마워, 언니. 숙제 끝.”
오랜만에 훈훈한 저녁 풍경 위로 유난히 밝은 달빛이 넓게 내려앉았다.
아침 육상부 연습이 있어 일찍 집을 나섰다. 햇살이 아침이슬을 걷어가기 전이라 길가 풀잎들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언니 손을 빌리긴 했지만 숙제를 다 했다는 안도감에 발걸음은 더 가벼웠다.
'오늘 뛰어놀 것을 내일로 미루지 않겠다'는 소망을 품고 사는 나는 늘 숙제를 덜 해 조마조마했는데 오늘은 가슴을 쭉 펴고 앉았다.
2교시 종이 울리고 큰 키에 단정한 단발머리를 하신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자, 동시 쓰기 숙제는 다 해왔나요?”
“네.”
“그럼, 오늘은 자기가 쓴 동시를 친구들 앞에서 발표해 보는 시간 가져 볼게요.”
“아~~~”
“그냥 선생님 혼자 보시면 안 돼요?”
그 시절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하거나 자기 생각을 말하는 아이는 제한적이었고 자발적인 참여는 드물었다. 우리들의 원성에도 선생님은 온화한 미소를 띠실 뿐이었다.
“동시 발표해 볼 사람 있을까요?”
순간 교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오늘이 7일이니까 7번?”
쭈뼛쭈뼛 일어선 현숙이는 공책을 얼굴에 붙이고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동시를 읽었다. 선생님의 간단한 감상평(?)이 첨가되고 다시 몇몇 아이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수업 마칠 시간이 다 되어가자 마음은 벌써 놀이터에 가 있었고 공책을 덮으려는 찰나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셨다.
“마지막으로 은주 동시 한 번 들어볼까?”
놀란 나는 들썩이던 엉덩이를 의자에 붙였다 천천히 일어섰다.
목을 가다듬고 동시를 낭독했다. 선생님께서는 지그시 눈을 감으시고 내 주위를 맴돌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죄지은 사람 마냥 괜히 눈치를 살폈다.
“아주 잘했어요. 어머니를 향한 마음을 참 잘 표현했네.”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1도 없는 작문 실력을 칭찬하셨고, 아니라고 말하기엔 교실 안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수업 끝나고 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했는데 이내 잊어버렸다.
며칠 뒤 국어 수업 시간, 선생님께서 이번 달 교내 백일장 대회 운문 부문에서 내가 장원을 받게 되었다고 하셨다.
낭패다. 장원이라니. 아이들의 박수세례가 이어졌지만 내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언니는 4학년 수준에 맞게 대충 마무리한다더니 어떻게 된 걸까? 난 남의 것을 탐내는 부도덕한 아이는 아닌데 참담한 결과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선생님께 이실직고해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쉬는 시간에 교무실 앞을 기웃거렸다.
“선생님, 저 그 동시요. 사실은...”
“아, 마침 잘 왔다. 여기 큰 원고지에 동시 좀 옮겨 적어 올래? 지금 바로 해서 가져와. 알았지?”
큰 일이다. 매달 입상한 작품은 교무실 앞 게시판에 한 달 동안 전시된다. 동시 잘 쓴다는 오해를 받기 전에 얼른 해명해야 하는데 좀처럼 기회는 오지 않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실은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은주야, 이번 주부터 특별활동 시간에 문예부로 가면 돼. 체육 선생님께서도 허락하셨어.”
청천벽력 같은 통보에 어질 하여 나도 모르게 선생님 치맛자락을 잡을 뻔했다.
“안 돼요, 선생님. 다음 달에 육상대회도 있고 저는 체육부가 좋아요.”
“육상연습은 방과 후에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시대. 일단 문예부 한번 해 보고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너랑 잘 맞을 수도 있잖아.”
'절대 그럴 리는 없어요.'
마지막으로 체육 선생님께 호소해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멀건 죽처럼 밍밍했다.
“담임선생님이 네가 시를 그렇게 잘 쓴다며 부탁하시니 어쩔 도리가 있냐. 수업 끝나고 육상연습 시간에 보자.”
“이게 다 언니 때문이야. 다른 날은 모른척하더니 그날은 왜 친절하게 봐주냐고.”
“숙제 도와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장원이면 좋지 웬 심통인데.”
“선생님이 이제부터 문예부 하래. 으아앙~.”
“그래? 잘됐네. 문예부하다 보면 책도 좋아지고 글도 잘 써질지 모르잖아. 호호호.”
언니가 나를 골탕 먹이려는 큰 그림은 아니었을까? 저 검은 웃음이 의심스러웠다.
비가 쏟아져 운동장에서 뛰어놀 수 없을 때면 모를까 스스로 도서실에 가 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국어책에 나오는 동화만으로도 난 충분했으니까.
넌 가짜야. 넌 상을 훔쳤어. 거짓말쟁이! 며칠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발에 맞지 않는 헐거운 신발이 얼마나 불편한지 잘 알기에 장원이라는 상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마냥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문예부에 간 첫날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오늘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군장병 아저씨께 위문편지를 써 볼 거예요."
편지지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내게 문예부 선생님께서 그냥 편안하게 쓰면 된다고 하셨다.
'안 쓰는 게 아니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못 쓰는 거예요'
1분단 창가자리에 앉아 운동장을 맘껏 달리는 체육부 친구들을 보니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우리에 갇힌 호랑이의 심정이 이럴까? 언니를 원망하며 마음이 콩밭에 가 있던 그날, 결국 난 한 시간 내내 '국군장병 아저씨께'만 써놓고 더 이상 진척이 없었다. 백지 답안지를 제출하는 학생을 마주한 듯 당황하신 문예부 선생님께서는 다음 주에 해도 된다며 나를 다독이셨다. 애써 해맑게 웃었지만 속상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골이 난 나는 화단에 서 있는 이승복 동상을 보고 마음속으로 힘껏 외쳤다.
'나는 문예부가 싫어요!'
그 뒤로도 내 의사와 상관없이 밋밋한 문예부 생활은 지속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운동장보다 도서실로 달려가는 날이 더 많아진 나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책 읽는 것이 뜀박질 못지않게 재미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 책 뒤표지에 붙어있는 종이 대출카드에 내 이름을 아로새기는 낙으로 도서실을 들락거리며 하굣길엔 코흘리개 동생들의 이야기꾼으로 거듭났다.
”언니, 오늘은 어떤 이야기해 줄 거야? “
”있잖아, 옛날옛날에... “
그 백일장 사건 후유증으로 나는 아직도 시 알레르기를 심하게 앓고 있다. 언니의 저주는 처방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