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quaviT Jun 07. 2021

Michel, ma belle

프랑스, 몽상미쉘




  안트베르펜을 마지막으로, 벨기에에서의 여정은 끝이 났다. 이제 남은 일정은 프랑스로 건너가서 몽상미쉘을 본 후, 유로스타를 타고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는 것이었기에 일단은 파리로 가기로 했다.




  찾아보니 안트베르펜에서 파리로 가는 방법은 다양했지만, 여행도 어느덧 중반을 넘어 슬슬 주머니 사정이 위험해지고 있던 때였으므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2016년)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안트베르펜에서 파리까지는 약 5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버스표를 안트베르펜 중앙역에서 현장발권한 뒤 위의 왼쪽 사진에 있는 안트베르펜 항구 근처까지 가서 타야 했다. 이 과정에서 상당히 아슬아슬하게 발권을 했던 기억이 난다. 창구 직원도 많이 해보지 않은 일인듯 좀 헤메기도 했지만 좀 시간을 잡아먹은 건 대한민국의 영어표기명. 아시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외국 홈페이지에서 대한민국의 영어표기가 제각각인 경우가 많다. Republic of Korea / Korea, Republic of / South Korea 등등. 하나하나 찾아보느라 시간이 꽤 많이 소요됐지만 다행히 제 시간에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설명이 필요 없는 파리의 주요 관광지들.



  이른 아침 출발했기에, 파리에 도착해서도 시간이 그럭저럭 남았다. 호스텔에 짐을 풀고 파리 곳곳을 돌아다녔다. 중학생 때 가족끼리 유럽여행을 다녀왔을 때 방문하고 어느새 12년이 지나 다시 방문해본 파리였기에 거의 처음 방문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때 날씨도 꾸물거리고, 5시간이나 버스를 탔으니 그냥 호스텔에서 술이나 마시면서 밍기적댈까도 생각했지만 이왕 온 거 돌아다녀보자, 하고 나선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 특히 화재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노트르담 성당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2019년 4월에 화재가 났으니 어느새 2년도 훌쩍 지났는데, 어떻게 잘 복구되었는지 궁금하다. 코로나가 끝나면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렌(Rennes) 역



다음날 이른 아침, 몽상미쉘로 가기 위해 파리 몽파르나스 역(Gare Montparnasse)에 도착한 후, 기차를 타고 렌 역으로 가는 TGV를 탔다. 투어를 끼지 않고 몽상미쉘로 가기 위해서는 렌 역까지 기차를 타고 간 후, 렌 역에서 또 버스를 타고 몽상미쉘 인근의 마을까지 가서 또 거기서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다. 이 때 열차 시간표들도 다 찍어뒀었는데, 워낙 시간이 오래 지난만큼 지금은 다 변경되었을 것 같아 따로 올리지 않는다.



몽상미쉘 인근 마을에서 몽상미쉘까지 데려다주는 버스 



기억하기로는 약 20~30분 정도를 달려서 몽상미쉘 인근의 마을에 도착했던 것 같다. 여기까지 왔으면 일단 80%는 다 왔다고 봐도 된다. 사람들이 몰려가는대로 따라가면 몽상미쉘까지 데려다 줄 특이하게 생긴 버스가 보인다. 생긴 것도 특이하지만 구조도 특이한 것이, 앞뒤로 운전석이 달려있다. 한 마디로 버스를 타고 몽상미쉘까지 데려다준 후, 버스기사는 U턴할 필요 없이 그냥 뒤에 있는 운전석으로 자리만 옮기면 된다. 편해 보이기는 하지만 운전석을 하나 더 만들 필요까지 있었나...싶은 신기한 버스였다.





버스를 타고 몽상미쉘까지는 10분 정도가 걸린다. 사실 체력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고 날씨만 괜찮다면 걸어서 가도 괜찮을법한 거리다. 어차피 몽상미쉘까지 가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길을 잃을 걱정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이라 그냥 버스를 탔지만, 돌아올 때는 시간도 여유가 있었기에 그냥 걸어서 돌아왔다. 걸어서는 한 40분 정도가 걸린다. 천천히 가까워지고, 또 멀어져가는 몽상미쉘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다면 걸어가보자.



몽상미쉘(Le Mont-St-Michel). 전경을 담으려면 조금 뒤로 물러나서 찍어야 할 정도로 크다.



  몽상미쉘 바로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버스가 멈추고, 문이 열리면 마침내 이 곳에 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절로 뛴다. 한 눈에 다 담기지 않는 거대하고 웅혼하고 고색창연한 이 수도원은 육지와 이어주는 외딴길 하나를 제외하면 주변에는 뻘밖에 없어서,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만 같다. 이렇게 커다란 수도원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708년, 꿈에 연속으로 3번 나타난 미카엘 대천사의 명에 따라 생 오베르 주교가 만들었을 때는 바위산 위에 있는 조그마한 수도원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수도원의 규모가 점점 커져가며 점차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 날씨가 좋은 날 봤어도 멋졌겠지만, 이런 흐린 날씨에 봐도 나름 분위기가 있어 꽤 멋졌다.



몽상미쉘의 분주한 거리



  몽상미쉘은 그 거대하면서도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것처럼 뾰족한 모양새의 전경과 중세풍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모습으로 인해 한 번 보면 쉬이 잊히지 않는다. 그런 분위기는 안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중세풍의 돌담과 고풍스런 집, 그리고 아기자기한 상점이 위치하고 있어서 뭐랄까,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호그스미드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런 면면 덕분일까, 디즈니의 2010년작 <라푼젤>에 등장하는 코로나 왕국의 수도는 이 몽상미쉘의 외관을 따서 그려졌다고 한다.



몽상미쉘 주변




  몽상미쉘은 말 그대로 외딴섬이다. 앞서 말했듯 육지와 이어주는 길 하나를 제외하면 바다로 둘러쌓여있다. 낮 동안엔 바닷물이 빠져 고운 뻘로 뒤덮인다. 지금이야 길이라도 있으니 망정이지, 옛날에는 정말 드나들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수도원에는 딱 맞는 곳이다.

  이 몽상미쉘 주변부는 의외로 양을 키우는 데 상당히 좋다고 한다. 위의 사진에서도 오른쪽 위를 보면 목초지가 있는 것이 보이는데, 바다 근처에 있는 곳인만큼 풀에도 소금기가 많이 배어있어 그 풀을 먹고 자란 양고기 역시도 소금간을 하지 않아도 꽤 짭짤한 편이라고. 이렇게 몽생미쉘 주변에서 기른 양을 프리살레(Le Pre Sale)라고 한다. 이 지역 명물이며 프랑스 전역에서도 인기가 많은 고기인데 정작 이 때는 존재를 몰라서 먹어볼 생각조차 못했다. 아쉬워라.



몽생미쉘의 팜플렛



몽생미쉘은 수도원 관람이 가능한데, 정말 의외로 한국어 팜플렛이 있다! 위에서 보시다시피 글자의 배치가 좀 아스트랄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감지덕지. 한국인이 정말 많이 오긴 하는 것 같다. 정작 내가 갔을 때는 한국인은 커녕 동양인도 거의 보지 못했지만...




몽생미쉘 수도원 내부



  사실 몽생미쉘 수도원 내부는 꽤 썰렁해서 볼거리가 그다지 많지는 않다.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내부 장식은 극도로 절제되어있고, 상당히 엄숙한 분위기라서 해가 진 뒤엔 꽤 무서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나름대로 중세의 느낌이 잘 살아있어서 매력적이었다. 미카엘 대천사가 지켜주고 있기 때문일까, 관리도 잘 되고 있어서 훼손되거나 위태위태한 부분이 없다. 실제로 몽생미쉘은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 당시에도 영국과 가장 가까운 노르망디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영국에게 점령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몽생미쉘 수도원 근처에는 백년전쟁 당시 용감하게 활약한 기사인 베르트랑 뒤 게클랭(Bertrand du guesclin)과 그의 아내 티펜(Tiphaine Raguenel)이 살았던 저택을 박물관으로 꾸며놓았는데, 중세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물품들이 가득해서 이쪽을 더 재미있게 봤다. 개중에는 말로만 들었던 정조대(...)도 있었는데, 베르트랑이 출전한 사이 아내 티펜에게 채웠던 것이라고... 또 이 몽생미쉘은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수도사들이 쫓겨나고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지하감옥도 어느 정도 재현해둬서 이런 거 좋아하는 나로서는 꽤 흥미롭게 봤다. 여기에도 꽤 혐오감을 일으킬 수 있는 것들이 다수 있어서, 관람에 다소 주의를 요했다.







  몽생미쉘은 노르망디에 위치해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스티븐 스필버그의 명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첫 장면을 기억하시는지)이 벌어졌던 바로 그 지역 맞다. 앞서 이 지역의 특산물로 프리살레 양고기를 이야기했었는데, 또다른 명물은 사과다.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이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서늘한 기후였기에 포도보다는 사과가 잘 자랐고, 따라서 사과로 만든 술이 일반적이었다. 즉 시드르(Cidre)와 칼바도스(Calvados)다. 사과로 만들어 탄산이 들어있는 술이 시드르, 그것을 증류한 것이 칼바도스로, 둘 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타입의 술은 아니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로컬 생산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지만, 수입해온 현지의 제품은 가격도 비싼 편이고 거의 없는 편. 하지만 몽생미쉘은 현지인만큼 기념품 가게에서 시드르와 칼바도스를 팔고 있었는데, 큰 병은 없었지만 작은 병으로나마 하나 사서 마셔보기로 했다.





  칼바도스. 사과를 증류해서 만든 40%의 독주. 시간이 늦어지며 서서히 밀려오는 바닷바람의 짠 향기를 안주 삼아 들이키면 목을 할퀴고 지나가는 강한 알콜부즈가 느껴지며 농축된 사과의 향기가 달아오른 속에서 피어오른다. 그러면 왠지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Michelle, ma belle
These are words that go together well
My Michelle
Michelle, ma belle
Sont les mots qui vont tres bien ensemble
Tres bien ensemble


  비틀즈의 1965년 앨범 러버소울(Rubber Soul)에 수록된 폴 매카트니의 명곡, 미쉘(Michelle)이다. 그 곡의 분위기처럼 어쩐지 처연한 분위기의 날씨에 젖은 몽상미쉘에서, 칼바도스가 떠올리게 해 준 곡을 흥얼거리면서 돌아가는 길은 혼자였지만 쓸쓸하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알고 보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