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껴야 잘 살지

by 김진심

기억이 또렷하게 남아있는 일들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나의 기억창고에 생생한 장면은 많이 있진 않다. 그저 드문, 찰나의 순간 정도가 전부이다. 특히 유년시절은 더더욱 드물다. 눈을 감고 그때를 기억하려 해도 떠오르는 장면은 좀처럼 없다. 참, 아쉽다.


서운한 마음에 수납상자 속 낡은 앨범을 뒤적여보았다. 뭐라도 떠오를까 하고 마랴.

‘그래, 우리 집은 작은 단칸방이었어. 그곳에서 엄마, 아빠, 오빠, 나 이렇게 네 식구가 살았어. 좁디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살았지?’ 그렇게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6살까지 살았다. 내가 태어나면서 첫 집은 아닐 테고, 몇 번째 집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엄마는 그 작은 공간을 매일 쓸고 닦았다. 80년대 그때는 청소기도 없었으니 (다른 집은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먼지를 알뜰하게 담아내고, 걸레를 손수 빨아서 여기저기 닦아냈을 것이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깨끗한 집안에서 우리 가족이 지낼 수 있도록 애쓰셨던 것 같다.


초등학교를 가기 전, 거실과 함께 방은 두 칸이고 화장실 한 칸이 집안에 있는 다세대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살림은 조금 나아졌지만 엄마는 집에서 부업을 하셨다. 도라지를 받아와서 껍질을 제거하는 일이었고 오빠와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일은 이어졌다. 아이들 챙기느라, 살림하랴, 도라지 까랴 온종일 집 안에서 쉴 새 없이 일하느라 고생하셨다. 그 와중에도 쓸고 닦는 일은 기본이고 엄마표 따뜻한 밥상과 간식은 시간 맞춰서 나오는 급식처럼 준비되었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몇 년 후, 방이 세 칸인 신축빌라 4층으로 옮겨갔다. 남매인 우리에게 각자의 방이 필요했고 더 이상의 이사걱정 없이 지내고 싶으셨던 걸까? 나는 그 빌라에서 결혼하기 전까지 20년을 살았다. 엄마와 아빠는 더 열심히 일을 하셨다. 아마도 빚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자식은 부모를 보고 자란다. 내가 엄마와 아빠를 보고 배운 것이 있다. ‘검소함’

낭비하지 않고 사치도 없고 수수하게 살아가는 삶. 그리고 물건이나 돈을 함부로 쓰지 않고 아끼면서 살아가는 모습. 그렇기 때문에 살림살이는 조금씩 조금씩 나아진 것이 아닐까?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이 그 시절에는 숨기고 싶기도,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인간에게 적절한 결핍은 필요하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채워져만 있다면 잃어버릴까 조바심이 나겠지만, 덜 채워져 있다면 필요한 부분을 찾아서 보충하는 시도와 노력하고자 움직이는 동기부여가 된다. 어쩌면 나에게는 내 안의 한구석 어딘가에 '아껴야 잘 살지'라는 싹이 나와 함께 자라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혹시라도 시들해져 가기 전에 물을 주고, 볕 좋은 곳에 두기도 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게 해 주고, 건강하게 자라라는 격려의 말도 해주며 꽃이 피어날 수 있도록 여러 과정들이 지속되고 있음이 느껴진다.


꽃이 피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는다.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주고 난 기다릴 뿐이다.



A penny saved is penny earned.
- Benjamin Frank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