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구입하면 신발사이즈가 잘 맞는 박스 안에 물건이 가지런히 담겨있다. 그렇게 신어왔던 신발 말고 남아있던 나이키, 컨버스 등등의 크기가 제각각인 신발상자는 나의 추억상자로 알뜰하게 재활용되었다.
‘진심아, 뭘 그런 것까지 모으고 있니?’
직사각형 컨버스 상자에는 식당이나 카페이름이 적힌 다양한 디자인의 성냥갑과 현장발권으로 본 영화티켓 100여 장을, 조금 더 큰 상자에는 중·고등친구들과 주고받은 엽서와 편지를, 작은 상자에는 98년부터 모아 온 빼빼로데이에 먹었던 빼빼로 과자상자를, 그 외에도 실시간 쌍방소통을 이끌던 삐삐와 핸드폰기기, 내 이름이 새겨진 명찰들과 각종 배지, 난생처음 걸린 독감으로 복용했던 타미플루 약상자, 12권의 다이어리,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에서 구입한 소소한 기념품 등 추억이 깃든 물건은 여러 개의 신발상자 안에 보관되었고 밖으로 꺼내어지지 않았지만 나와 함께 숨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소중하게 생각했으니까.
유난히 후각이 발달했는지 냄새를 잘 맡고, 스치듯 지나친 그 향은 기억으로 저장되는 것처럼 상자 속에 모아 왔던 물건들을 볼 때면 옛 기억이 조금씩 살아났다. 가끔씩이라도 추억을 꺼내보는 재미로 그 순간만큼은 때때로 힘겨웠던 현실세계를 벗어나곤 했다.
누구에게나 적절한 결핍은 필요하다 했지만 물건의 결핍, 정서적 결핍이 나에게 온 것일지도.
대단한 것을 원하고 바라는 건 아니었다. 작은 것이라도 감사하게 여기고 마음만은 누구보다도 부자라고 스스로에게 자꾸만 채찍질했다. 그래서 소소하게라도 계속 모으고 채우고 꾹꾹 눌러 담았나 보다. 추억을 수집하는 맥시멀리스트 놀이는 몇십 년이나 지속되었다.
책상이 너저분해진다. 그건 내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방증이다. 책도 쌓아두고, 먼지도 쌓아두고, 필통 속 펜들은 밖으로 널브러져 있고, 옷가지들은 의자에 쌓여 어수선하고 누가 봐도 지저분하다는 말 한마디씩 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그럴 때마다 알아차리는 순간이 오면 대청소를 시작한다. 그때그때 당기는 노동요를 틀고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의 자리를 찾아준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느긋하게, 진심으로 내 마음에 들 때까지 말이다.
추억상자 위에 쌓인 먼지도 없애준다. 그 먼지는 언제부터 붙어있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매일 같이 추억상자를 열어보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쓸어내는 상자의 먼지와 그 개수는 점점 늘어났고 그것을 열어보는 빈도는 점차 줄어들었다. 평생 상자를 끌어안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추억 모으는 맥시멀리스트는 차츰 미니멀리스트가 되어간다. 물건이 아닌 마음속에 간직하고 초콜릿을 꺼내먹듯이 그때그때 그렇게 꺼내본다.
2025년 현재, 편지와 다이어리를 제외한 추억상자는 단 두 개다.
(빼빼로 과자상자는 아직까지도 고민 중이다. 재미 삼아 둘 지, 내 손을 떠나보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