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단어를 유심히 들여다본 적이 없다. 나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라 여겨왔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학생 즈음부터인가 막연하게 현모양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현모양처는 분명 결혼을 해야 이룰 수 있는 일인데 말이다. 사람일은 참으로 알 수가 없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나는 더더욱 그랬다.
한 사람을 오래도록 좋아해 본 적은 있어도 아주 오랜 기간 만난 적은 없다. 그러다 이십 대 끝무렵에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 시절 내가 좋아하는 일은 버스를 타고 서점에 가서 책냄새를 맡으며 이리저리 책을 뒤적이다가 손에 잡히면 바닥에 털썩 앉아서 그것을 보는 일, 한 달에 한 권씩 스스로에게 책 선물을 하는 일,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며 일상을 담아내는 일이었다.
‘어머, 이 사람도 퇴근길에 반디앤루니스를 들러 종종 책도 읽고 DSLR 카메라에 관심이 많다고?’
그랬다. 내가 즐기고 있는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내 앞에 있었고, 오가는 이야기가 지루할 틈도 없이 그 시간들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알고 보니 같은 동네 사람이었고 그래서 매일 보다시피 하며 수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어느샌가 우리는 작은 배를 타고 유유히 결혼이란 종착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서로를 알아가고 결혼하기까지 1년 하고도 두 달 정도 걸렸다.
모든 일이 그렇듯 결혼식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사실 준비라는 것과는 별개로 내 마음은 당장이라도 함께해도 상관없었지만 눈으로 보이는 과정은 그게 아니었다. 평생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은 나와 너인데, 뭘 그리 해야 할 일 천지인지 누구를 위한 결혼일까? 그래서 ‘작은 결혼식’을 꿈꾸었다. 너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하고 진심으로 축하받을 수 있는 그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나 무리였는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왜,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 그 말에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결혼은 서로의 집안과 집안이 만나는 일이었다. 그 옛날 상부상조 품앗이의 결혼문화는 나도 거스를 수가 없었다. 얼굴도 잘 모르는 부모님의 지인들이 결혼을 축하한다며 건네는 축의금은 언젠가 갚아야 할 빚처럼 느껴졌다. 사실 그 돈은 내가 아닌 엄마와 아빠의 빚으로 남겨졌겠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몇 달을 준비했건만 정작 결혼식은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보통 주말에 예식이 많다 보니 내 앞뒤 시간에도 이미 예약을 해놓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처럼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남편처럼 검은색 턱시도를 입은 신랑이 자신들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의 결혼식처럼 시간에 맞추어 나도 후다닥 찍어내는 결혼식을 하였다.
13년 차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아쉬운 일이다. 스몰웨딩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말이다. 다시 하게 된다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혼인서약으로 평생을 잘 살아가겠다는 편지를 낭독하고, 간소하게 결혼반지만 하나씩 나누며, 친한 하객들에게는 감사의 인사와 정성스러운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싶다. 더불어 그 자리에 신혼부부가 된 우리도 그들과 같이 밥을 먹고 커피 한잔의 여유를 가져보고 싶다.
후다닥 정신없이 지나는 시간보다 합리적이고 뜻깊은 시간이 훨씬 더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Love looks not with the eyes, but with the mind.
- William Shakespe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