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아가를 좋아했다. 지나가는 아이를 보면 무척 귀여웠고, 사랑스러움에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우주의 존재처럼 보였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겠지?
결혼을 하고 양평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취업을 할 생각에 이력서를 쓰고 면접도 보던 와중이었다. 머리카락이 이상하게 계속 기름졌고 머리를 감아도 왜 이렇게 떡진 머리는 지속되는 건지. 또 이전과는 다르게 잠이 쏟아지고 있는 걸 알았다. 그건 나의 아이가 나에게 보내는 작은 인사였다. 임신테스터기에 선명한 두 줄, 그렇게 따스한 봄날에 임산부가 되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남편만 믿고 온 이곳에서 일이라도 하며 지내고 싶었지만 임산부의 이력서를 받아주는 너그러운 직장은 없는 듯 보였다. 일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뱃속의 아이만을 생각하며 태교에 전념했다. 요동치는 내 안의 새로운 자아도 만나가며(호르몬 변화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었던..) 나름 건강한 임산부로 지냈다. 시간이 흐르고 41주+4일에 첫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1년 8개월 후, 40주+3일이 되어서 둘째 아이까지 만났다.
우리 아이들은 엄마 뱃속이 아주 편안했는지 나올 생각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게가 점차 늘어나면 자연분만이 쉽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유도분만을 했다.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자궁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작은 태아로서 힘겨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진짜 엄마가 되기로 한다. 아이를 위해서 고통스러워도 소리지르며 몸부림치지 않고 우아하게 출산을 하자. 뱃속에서도 잘 품었으니 세상 밖으로 나오는 길, 엄마의 조용한 응원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 두 명과 함께 우리는 네 가족이 되었다.
아이들은 우리를 믿고 온 반가운 존재이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서 그들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태어나서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해 주었으니 고마움과 함께 책임감이 더해졌다. 엄마가 아이에게 해 주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사람이 사람을 키운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초보엄마는 우선 육아선배님들의 책을 읽고 맘카페도 가입해서 필요한 정보를 찾고 얻어갔다. 하지만 아이마다 기질은 다르기 때문에 모든 정보가 다 통하지는 않았다.
‘얘가 왜 이렇게 울지? 왜 맘마를 잘 안 먹지? 왜 공들여 재우고 내려놓으면 눈을 뜨지?
왜, 왜, 왜. '왜'를 묻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육아 팁은 참고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내 아이를 내가 알아야지, 누가 알 것인가. 면밀한 관찰과 함께 육아에 대한 생각과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잘 어우러져야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일 년 되는 날에 돌잔치를 한다. 아가들에게는 일 년 동안 건강히 잘 자라주었음에 축하를, 부모에게는 아이를 잘 키워내느라 애쓴 것에 격려를 해주는 날이다. 참 감사하지만 많은 준비를 했었던 결혼식처럼 돌잔치 또한 비슷한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위해 기꺼이 해줄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 속 성대하게 생일파티를 해주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첫째는 해주길 바라는 말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결국에는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둘째의 돌잔치는 하지 않고 가족여행을 떠났다.
원래부터 모임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육아를 하며 만난 육아동지들은 있지만 이따금 만나서 하는 주된 이야기는 각자의 아이 얘기였고, 맛있는 점심과 커피 한잔은 고상하지 못했다. 그 시간 동안에도 아이를 케어하느라 바쁜 우리들은 엄마였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육아는 오롯이 각자의 몫이었고 쌓여있는 집안일도 척척 해내야 하는 우리는 원더우먼처럼 보였다. 나는 마치 슈퍼파워를 가진 엄마가 된 것처럼 ‘내 아이는 내 손으로 키운다’며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을 확보하고,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으며 세월을 보냈다.
아이와 둘이서 셋이서 함께하는 나날들로 웃는 날이 정말 많았고 에너지가 소진될 때면 힘들어서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나도 태어나서 엄마는 처음이었다. 어떤 일이든 애초부터 잘 해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잘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지. 원래부터 잘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너무나 애쓴다면 어느새 지쳐서 쓰러질지도 모른다.
나는 너무나도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엄마였고 내 삶은 온통 아이들에게 맞춰있었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 여겨왔는데 결혼과 임신, 출산과 육아를 하며 나의 삶의 방식은 점차 사라져 가고 나를 잃어가는 기분이 들어갔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 때면 종종 나를 위로하는 말들을 건네며 토닥여 주었다.
"그래. 진심아, 엄마는 처음이지만 너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러니 너의 진짜 이름도 잊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