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간 관계론
살다 보면 사람은 혼자일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혼자 걷던 길에 누군가 다가와 조용히 곁에 있어줄 때 그제야 삶이 조금 따뜻해진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건 그저 손을 잡는 일만은 아니다. 관계란 끊임없이 노력하고 서로가 기울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균형을 맞춰가는 일이다. 좋은 관계는 단 한 사람의 헌신으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계속 손을 뻗고 누군가가 계속 등을 돌린다면 결국 그 관계는 한쪽으로 기울고 만다. 함께한다는 건 같은 속도로 걷는 일이다. 한쪽이 너무 앞서가면 다른 한쪽은 뛰어야 하고 한쪽이 멈춰 서버리면 다른 한쪽은 외로워진다. 그래서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 속에는 ‘너의 속도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나는 한때 누군가를 너무 사랑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 사람의 상처에 내 마음을 내어주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내 감정을 억누르고 그 사람의 기분에만 온통 맞춰 살아가고 있었다.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한 줄 알았지만 그건 유지가 아니라 내가 서서히 사라지는 일이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관계는 나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너와 내가 함께 살아지는 일이라는 것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각자의 자리를 지켜주며 중심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관계의 이름이라는 걸.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관계란 양손에 초를 들고 천천히 걸어가는 일이라고. 급히 다가서다 촛불을 꺼뜨리는 일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나아가며 불씨를 지켜가는 일이다. 초는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안 된다. 조심스럽게 품고 가야 한다. 한쪽이 너무 앞서가면 남겨진 촛불은 바람에 꺼지고 만다. 그러니 함께 걷는다는 건 서로의 불빛을 지켜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 불빛이 꺼지지 않게 가끔은 발걸음을 늦추고 가끔은 조용히 등을 바람에서 가려주는 것 누군가의 마음에 다가간다는 건 허락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노크하고 기다리고 그 사람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그 앞에 잠시 머무는 일이다. 그 기다림이 초처럼 조용하고 따뜻해야 한다.
나는 그런 관계를 좋아한다. 말이 없어도 마음이 전해지는 관계 바라만 봐도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속도를 맞춰 걸어가는 관계. 초를 들고 걷는 사람은 안다. 불빛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어둠 속에서 꺼지지 않으려 얼마나 많은 조심과 배려가 필요한지를. 관계도 그렇다. 작은 말 한마디가 큰 온기가 되기도 하고 혹은 깊은 상처가 되기도 하니까. 그래서 조급하지 않기로 했다. 서로를 알아가는 일도 사랑하는 일도 오해를 풀고 이해에 다가서는 일도 모두 천천히 내가 너의 걸음에 맞추어 가겠다고 말없이 전하는 다짐 같은 것.
불빛이 흔들릴 땐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른다. 바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린다. 그것이 관계의 지혜다. 무작정 달리기보다 함께 불빛을 감싸 쥐는 손이 되는 것. 그렇게 양손에 초를 들고 나는 너의 옆을 걷고 싶다. 우리의 관계가 꺼지지 않도록 불빛이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의 등불이 되어 이 길을 끝까지 함께 걸어가기를. 그리고 문득 돌아보면 참 감사한 일이다. 오십 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오며 조심스럽게 걸어온 이 길 위에 여전히 나와 함께 걸어주고 있는 인연들이 곁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참말로 고맙고 따뜻하다. 그들이 있어 내가 흔들릴 때도 중심을 잡을 수 있었고 그들과 함께였기에 나도 누군가의 초가 되어 작지만 흔들림 없는 빛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