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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를 빚었습니다

by 마르치아


만두를 빚는 일은 어쩌면 수행과도 같다. 만두를 일상에서 쉽게 빚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두를 빚겠다고 결심하는 그 순간부터 묵언 수행이다. 말소리는 저절로 가라앉고 손끝의 촉감만 살아나기 시작한다. 도마 위에 놓인 야채들이 조용히 호흡하고 칼날이 부드럽게 재료를 쓸어내릴 때 나는 어느 깊은 산사의 새벽처럼 잠잠해진다.


만두속은 매번 달라진다. 나는 만두속에 많은 것을 넣지 않게 오히려 담백하게 만드는 만두가 좋다. 명절에는 전거리를 넉넉하게 만들어 두었다가 냉동고에 얼려두고 그것에 그때그때 떠오르는 채소를 섞어 만두를 빚는다. 오늘 만두는 전거리에 버섯과 숙주를 다져 넣었다. 버섯 넣은 만두를 좋아한다. 버섯은 마음까지 기름지게 하지 않으면서 은근한 깊이를 남긴다. 씹을 때마다 촉촉하게 살아오르는 그 향은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에게서 문득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 같다.


그리고 만두를 수저로 갈랐을 때 나오는 그 육즙을 포기할 수는 없다. 조용히 갈라지는 순간 안에서 고이 머물던 뜨거운 국물이 수저 끝으로 흘러나오는 그 장면은 언제 보아도 마음 한쪽을 적시는 의식 같다. 반죽의 얇기를 가늠하며 살짝 들었다 놓는 손끝에서 육즙은 조용히 모여든다. 그래서 나는 만두를 함부로 베어 물지 않는다. 조금 뜸을 들여 먼저 수저로 갈라보는 그 순간이 거의 기도처럼 느껴진다.


만두를 빚으면서 나는 또 누군가를 생각하게 된다. 날이 추운데 끼니는 잘 챙기고 다니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나는 그리운 이들을 떠올린다. 반죽을 접고 또 접는 동안 그 얼굴들이 스쳐 지나가고 멀리 있어도 아무 말 없어도 한 번 떠오르면 눈썹 끝이 저절로 부드러워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손끝으로 따뜻한 모양을 만든다.


만두를 하나하나 접어 쟁반에 올릴 때마다 나는 그 그리움에 내 마음이 정확히 닿는 것 같아서 마음 한쪽이 놓인다. 손끝으로 몇 번 눌러 접어 만든 작은 모양 안에 말로 다 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소리 없이 자리를 잡는다. 한 알 한 알이 그리움의 작은 표정 같고 누군가 잘 지내기를 바라는 기도의 알갱이 같고 내 마음이 조용히 놓여 쉬어가는 자리 같다.


어릴 적 이렇게 추운 날에 김장을 마치고 신 김치를 해결하려는 마음으로 온 가족이 모여서 만두를 빚었다. 김치를 다지고 짜는 일은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이모와 엄마는 만두속을 치대고 나는 간을 보았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만두를 빚을 때 꼭 하는 장난이 하나 있다. 만두 하나에 후추와 마늘을 잔뜩 넣은 폭탄 만두를 만들어 만두국에 넣는 것이다. 그때는 서로 자신의 만두국에 그 폭탄 만두가 들어있지 않는지 조마조마하면서 만두국을 호호 불어 먹었다. 얼얼한 향이 올라올까 봐 눈치를 보며 살짝 베어 물고 표정을 살피던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른들이 웃음을 참으며 서로를 훔쳐보던 모습과 한 입 잘못 베어 물어 기침을 하던 사촌의 얼굴까지 그 장난은 겨울 부엌의 공기를 한층 더 따뜻하게 만들었다.


지금 어른이 되어 생각하니 그 장난 뒤에 숨은 지혜를 알아차린다. 그 폭탄 만두는 국물의 맛을 잡아주는 작은 씨간장 같은 만두였다. 한 알의 장난이 국물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고 겨울날의 웃음을 끓여냈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그때 서로 눈치를 보면서 나누어 먹었던 만두국 그리고 찜을 몇백 개를 만들어도 그 자리에서 다 먹어 치웠던 유난히 만두를 좋아했던 우리 가족의 따뜻한 웃음소리. 그 따뜻한 장면으로 오늘 내가 빚은 만두가 나를 다시 데려간다.


김치의 짠 숨결과 만두소를 치대던 손들의 온기와 뜨겁다 조심해라 하던 어른들의 목소리가 시간을 건너 오늘 아침 내 부엌으로 고요히 내려앉는다. 손끝에서 작은 모양이 하나씩 만들어질 때마다 그 오래된 웃음이 내 마음 안에서 조용히 살아난다. 그래서인지 만두를 빚는 일은 언제나 나를 데리고 과거의 한 장면으로 돌아간다. 그 시절의 우리 그 따뜻한 냄새 그 웃음이 내 손끝 위에서 다시 피어난다.


만두가 쟁반에 가득 찰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쟁반을 가지고 와야 한다. 삶도 이러하지 않는가. 가득 차면 비워야 하고 다른 그릇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늘 채우고 비우고를 반복하면서 삶을 살아낸다. 하나의 쟁반이 차오르는 순간은 기쁨이면서도 작은 아쉬움을 품고 있다. 꽉 차서 더는 머물 수 없는 그 순간 나는 또 다른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그 자리가 있어야 다시 손끝을 이어갈 수 있고 다시 새로운 마음을 담을 수 있다.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다음 것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이기에 나는 오늘도 조용히 자리를 옮긴다.


만두를 빚고 나면 부엌엔 따뜻한 김이 자욱하게 번지고 창밖의 겨울바람도 잠시 멈춘 듯 고요해진다. 이 조용한 시간에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한 알의 소금처럼 작은 기억들이 어른이 된 나를 또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손끝에 묻은 밀가루를 털어내며 나는 오늘도 어릴 적 그 웃음소리를 마음속으로 다시 불러온다. 장난처럼 굴려 넣던 폭탄 만두도 진지하게 간을 보던 내 어린 입술도 지금의 나를 이루는 한 조각의 세상이다. 그리고 오늘 빚은 만두가 다시 나를 그 장면으로 데려갔던 것처럼 앞으로의 삶에서도 음식 한 그릇이 추억의 문을 열어 나를 이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따뜻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만두를 빚는 아침은 잊었던 나를 조금씩 데우고 그리운 이들을 조용히 불러내며 겨울의 중심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말없이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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